[사람과 이야기] "해경시절 천안함 구조현장의 生과 死 목격… 떠나간 사람들 그려야 한다는 책임감 느껴"

    입력 : 2010.11.02 03:00

    창작만화 공모전 대상 받은 윤현석씨

    지난달 제8회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윤현석씨가 1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바다는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날 일은 정말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죽음 뒤에 남겨지는 이들, 떠나간 이가 남긴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죠."

    윤현석(25)씨는 전역을 한 달여 앞뒀던 지난 3월 26일 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가 탄 인천해경 501함은 이날 밤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어디론가로 갔다. "중국 어선 출몰이나 선박 구조 요청 같은 평상시 비상 상황과는 다른 분위기였어요. 해군의 요청이라는 말에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죠." 배가 도착한 곳은 백령도 앞바다, 바로 천안함 침몰 해역이었다. 온 천지에 기름 냄새가 진동했고 가라앉고 있는 천안함 근처엔 참수리정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눈앞은 모든 게 아수라장이었다. 그날 아침까지도 봤던 배가 옆으로 누워 침몰하고 있는 모습을 본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501함 해경들은 가라앉는 함수(艦首)에 있던 천안함 장병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물에 흠뻑 젖은 장병들은 추위에 떨었고 몸에서는 기름 냄새가 났다. 윤씨는 배 안을 오가며 생존 장병들에게 담요 등을 건네주다가 장병들이 생존자를 파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는?" "……." "아…." 윤씨는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가려지는 경계에서 '그는 구조되지 못했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침묵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윤씨는 지난 5월 전역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애니메이션 2학년으로 복학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구상해온 만화를 그렸다. '남김'이라는 제목의 이 만화는 하굣길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초등학교 여학생이 죽은 뒤 사람들이 그에 대한 기억과 그의 이름조차 결국 잊는다는 줄거리다. 천안함 희생자들도 잊혀 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그는 만화 서문 앞에 '천안함(772함) 사람들을 위해'라는 뜻의 'for people of 772 vessel'이라는 문구를 새겼고, 만화의 끝에는 천안함 46용사들의 이름을 적었다. 윤씨는 "2007년 즈음부터 구상하기 시작한 작품이지만 작품을 완성하게 된 원동력과 만화에 생명력을 부여한 건 천안함 사건이었다"며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걸 느꼈다"고 했다.

    윤씨는 제8회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이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다. 천안함 구조 현장에 다녀와서 '당신들 이름을 내 작품에 남기겠다'고 일기를 썼다는 윤씨는 "출품한 작품에는 감히 그래도 되나 싶어서 46용사들의 이름을 넣지 못했지만, 수상이 결정된 뒤 46용사들의 이름을 만화에 넣어 그들에게 작품을 헌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본 많은 사람들 중 그 이름들이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이름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윤씨는 "놀라운 한편 쓴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윤씨는 만화 제목 '남김'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고 정치 이슈가 됐지만, 떠나간 사람들은 빠르게 잊혀지더군요. 천안함 희생 장병뿐 아니라 모든 떠난 이들이 가지고 있던 꿈들, 그들이 떠남으로써 이뤄지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윤씨는 이 만화를 통해 남겨진 이들과 떠난 이 모두를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만화가 허영만씨처럼 평생 현역 만화가로 살고 싶다는 윤씨는 벌써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밝고 힘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윤씨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