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 대상' 박영일 경감 "실낱같은 증거도 반드시 찾아냅니다"

"사건 현장이 다 비슷해 보여도 천차만별이지요. 실낱같은 미세 증거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게 과학수사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4일 '과학수사의 날'을 맞아 경찰청이 주는 '과학수사 대상(大賞)'을 받은 박영일(48) 경감은 "지능적 범죄가 늘어나 현장에서 증거 찾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럴수록 선입견을 갖지 않고 더 파고들어가야 밝혀낼 수 있다"고 했다. 서울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현장감식2팀장인 그는 1992년 현장감식반에 합류했다. 일선서 강력팀장 1년을 제외하고 17년 동안 강력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채취하고 분석하는 과학수사(CSI) 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이날 경위에서 경감으로 1계급 특진했다.

박 경감은 과학수사 장비를 스스로 개발하고 개선한 공로를 높게 인정받았다. 2007년 현장 감식 때 혈흔이 잘 보이도록 주변을 어둡게 가려주는 텐트 모양의 '이동식 차광(遮光) 검사실'을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혈흔이나 정액, 지문과 족적(足跡)을 찾아내기 쉽도록 다양한 파장의 빛을 내는 과학수사 전용 손전등을 개발해 전국의 과학수사대에 전파했다. 작년에는 수입품 가격이 1000만원대에 달하는 휴대용 증거물 검사장비와 현장에 남은 지문을 채취할 때 쓰는 투명테이프 모양의 장비를 자체 개발했고, 현재 특허 등록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박 경감을 거쳐 간 중요 사건은 99건에 이른다. 지난 7월 발생한 40대 여약사 납치 살해사건 때는 용의자를 가려낼 결정적 단서를 발견했다. 범인이 피해자 차량을 몰고 잠시 들른 주유소에서 증거물을 수거해 범인의 '쪽 지문(일부만 나타난 지문)'을 찾아낸 것이다.

그가 수습한 시신은 500구가 넘는다. 박 경감은 "엽기적인 시체 유기 방법으로 충격을 준 2001년 5월 김윤지양 살해사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참혹한 시신을 늘 접해야 하는 험한 일입니다. 견디지 못하고 떠난 직원도 꽤 있지요.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가족이 안 지도 5년밖에 안 됐어요. '고생한다. 좋은 일 한다'며 격려해주는 아내가 늘 고맙습니다."

그는 경장에서 경감까지 3번의 진급을 모두 특진으로 하고, 재작년에는 옥조근정훈장도 받았을 정도로 과학수사 베테랑이다. 하지만 박 경감은 "모든 실질적 공은 현장에서 발로 뛰며 범인을 검거하는 일선 형사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