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우수한 학생 모아 가르치는 한국 교육에 충격"

"일본엔 대학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은 있지만, 미래 국제사회에서 활약할 우수한 학생을 키우는 '영재 교육'은 없습니다. 외국어·과학·컴퓨터에 뛰어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한국의 학교 현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5일 서울 선린인터넷고를 방문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1) 오사카부(大阪府) 지사는 여러 차례 "놀랍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지사는 학교 구석구석까지 돌아보았고, 학생들이 자유자재로 일러스트레이터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걸 보며 수행원들에게 "오사카에도 이런 걸 가르치는 학교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지난 2008년 현역 지사 중 최연소 당선된 하시모토 지사는 대표적인 차세대 일본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가 이쿠노 데루코(生野照子) 오사카부 교육위원장 등 오사카 교육 관계자들과 함께 방한한 이유는 한국의 교육을 배우기 위해서다. 버락 오바마(Obama) 미국 대통령과 안 덩컨(Duncan) 미국 교육장관에 이어 일본의 정치인까지 한국 교육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시모토 지사는 한국 교육의 우수성은 "외국어·과학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우수한 인재의 능력을 더욱 북돋워주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3~4일에 서울과학고와 대원외고를 방문한 하시모토 지사는 고교생들이 영어로 수업을 받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과학 이론을 토론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전날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의 면담 때도 "일본에는 한국 외고생 정도의 어학실력을 갖춘 학생은 대학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그런 실력 있는 학생들이 (대원외고에서) 한 해 400명씩 나온다는데, 이게 바로 한국이 약진하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영재학교, 자유로운 커리큘럼, 글로벌 인재육성이라는 목표가 한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하시모토 지사와의 일문일답.

―한국에서는 일본의 '유토리 교육(여유 교육·일본이 학생들 교육 부담은 줄이고 창의력을 키우자는 목표로 2000년대 초반 도입한 교육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유토리 교육은 실패했다. 그것도 대실패했다. 유토리 교육은 스스로 목표를 갖고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극소수 학생들에게만 효과가 있다. 나머지 대부분 학생은 유토리 교육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안 했다. 내 아이도 그 피해자다(그는 3남4녀의 아버지다). 고등학생이 시간 계산도 제대로 못 하고, 대학생이 분수 계산을 못한다. 얼마나 큰 문제인가."

―한국의 엘리트 교육은 과도한 입시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에선 고도 경제성장기 입시 경쟁이 과열화됐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유토리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물론 입시를 위한, 시험을 위한 단순한 주입식 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미래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와 교사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일본 교육에서 배울 점은 뭔가?

"일본은 톱(Top) 수준 학생들을 위한 영재교육은 없지만, 아주 뒤처지는 학생도 없다. 중·하위권 학생들도 일정 수준까지 교육 성취도를 끌어올려 낙오자가 적다."

―학생들의 학업 실적이 저조한 학교에 정부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그는 선린인터넷고에서 학교 평가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시교육청은 성적이 안 좋은 학교에 어떤 제재를 가하느냐"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렇다. 개별 학교에 학교운영 재량권은 주되, 학생의 학업 성취도 수준은 정부가 정하고, 엄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친 하시모토 지사는 다음 행선지인 서울 일본인 학교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려다 "한마디만 더 하자"며 강한 어조로 덧붙였다.

"(평준화만을 강조하고, 공부를 시키지 않는) 유토리 교육 모델을 도입하는 즉시 학교 교육 현장은 망합니다. 한국·일본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살 길은 인재를 기르는 교육밖에 없습니다. 외국어·과학 기술 등 세계무대에서 필요한 지식을 학교가 아주 아주 열심히 가르쳐서 국제적인 리더를 양성하는 데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