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된 남자 동기도 많은데 우리만 뜨니 역차별이죠… 하하"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여자도 하늘입니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가 3군 중 처음으로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을 때 잠시 유행했던 말. 이때 입교한 스무 명 여생도 중 전투기·수송기 조종사로 선발돼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던 7명의 여군이 지난달 소령 진급을 확정받았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출신 여군들 중 첫 영관장교다. 22대 1의 경쟁을 뚫고 공사에 들어간 이들은 첫 여성전투기조종사, 첫 여성편대장 등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을 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뒤 13년, 결혼해 두세 살 자녀를 키우는 박지연(32·F-5 E/F 조종사), 박지원(32·F-5E/F 조종사), 한정원(32·CN-235 조종사) 대위를 만났다.

"영화 '탑건'을 보고 전투조종사가 되기로 했지요. '여자라서 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박지원 대위의 알파걸다운 입학 동기다. 박지연 대위는 "아버지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고 집안 형편이 안 좋아 학비 부담 없는 공사에 지원했다"는 '소녀가장'이다. "체력장 5급에 턱걸이 0초. '구보'가 산책인 줄 알았다니까요." 한정원 대위는 "부모님은 교사가 되길 바라셨지만,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생도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체력'. "매주 금요일 오후 10㎏ 배낭과 3.2㎏ 총으로 완전군장하고 8㎞를 뛰는데 낙오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죠. '공사에 여자가 들어와 체력이 하향평준화됐다'는 소리가 들리는 마당에 생리 열외, 부상 열외면 끝장이거든요." 여생도라 교관들이 봐주지 않았냐는 질문에 모두 고개를 저었다. "봐주는 교관은 남생도들도 봐줘요. 가혹한 교관은 남녀 모두에 가혹하고."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 셋은 2002년 9월 고등비행훈련을 훌륭한 성적으로 마쳐 전투기와 수송기 조종사가 된다. "조종사 된 남자 동기들도 많은데 매번 우리만 화제가 되니 역차별이라는 생각도 했다"면서도 "여자인데 가능할까? 하는 우려를 씻고 고비를 넘어설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는 이들이다. 비행 전엔 징크스를 깨는 '비밀의식'도 치른단다. 박지원 대위는 화장실에 꼭 다녀온다고 했다. "약간 담겨 있는 느낌이 들면 비행이 잘 안 풀린다"며 "큰 거 배출하면 대박"이라며 웃었다.

최초의 여성 편대장으로 4기(機)의 전투기를 이끈 박지연 대위에게 '리더십'에 대해 물었다. "리더라고 완벽하지는 않음을 인정하고 후배들 도움도 기꺼이 받는 포용력이 중요하죠."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나온 '여성 장교에 대한 하극상' 이야기를 꺼내자 셋 모두 눈을 부릅떴다. "그걸 가만두나요? 조사실로 불러서 깨야지." 한정원 대위다. 하극상 원인에 여성의 문제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항명을 당하는 남자 장교는 없을 것 같나? 개인 리더십의 문제이지 젠더 문제는 아니다"라며 단호했다.

알파걸들의 진짜 시련은 출산 후에 온다. 박지원 대위는 "비행할래, 애 키울래 물으면 죄다 비행한다고 대답할 것"이라며 웃는다. 모유 수유를 15개월 했다는 박지연 대위는 "등에 메는 백팩형 유축기를 사가지고 화장실에서 젖을 짜곤 했다"며 "위로 올라갈수록 군 생활이 장밋빛만은 아니란 걸 깨닫는다"고 했다.

수퍼우먼 신드롬도 그들을 괴롭힌다. "약한 척을 못하겠어요. 생도 시절부터 체력을 지나치게 다져서 그런가, 잘 아프지도 않아요. 수박도 내가 들고, 무거운 박스도 들고. 어쩌다 몸살 나 드러누우면 남편이 그래요. '왜 이래 군인이?' 열 받죠."

속칭 '별'이라고 불리는 장군까지 진급할 것으로 기대하느냐고 물었다. 셋 모두 시큰둥했다. "주변에선 너희 중 한 명은 상징적으로라도 장군될 거라고 하는데 그런 상징은 사양하고 싶어요. 가정과 직업 사이에서 균형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게 최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