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사망보험금으로 모르는 사람을 살리다

"그분이십니까? 덕분에 이렇게 건강해졌습니다.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건강해지셨다니 제가 너무 감사해요. 어느 분인지 저도 궁금했어요."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2층 라운지에서 만난 두 가족은 서로 손을 잡고 한참 눈물을 글썽였다. 이들은 지난 9월 이 병원에서 신장수술을 마친 지덕성(61)씨 부녀(父女)와 세상 떠난 남편 김평섭씨 이름으로 지씨 수술비를 대준 박곡미(54)씨였다. 두 가족은 지난달 4일 지씨의 딸 지유나(30)씨가 서울성모병원에 보낸 편지 한 통이 인연이 돼 이날 만났다.

"김평섭 기부자님께. 기부자님이 도와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 사랑을 어떻게 갚을까 겁부터 났습니다. 성함밖에 모르는 기부자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평섭씨 이름의 기부금으로 아버지 신장이식 수술을 한 지유나씨가 김씨 앞으로 보낸 감사 편지였다.

딸 지씨는 올 4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백혈병 진단을 받은 어머니와 만성 신부전증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위해 병실을 번갈아 가며 간호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한 달 뒤엔 아버지가 응급실로 실려갔다. 딸 지씨가 아버지를 위해 신장을 내놓기로 했지만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지씨는 외동딸의 신장 받기를 거부했다. 딸의 간곡한 부탁에 신장이식을 받았지만 이번엔 수술비가 부족했다. 직장 나온 지 5개월이나 된 딸 지씨에게 수술비 1000만원은 큰돈이었다. 지씨 부녀는 퇴원 당일 병원측으로부터 "한 기부자가 수술비를 보탰다"는 말을 들었다.

지씨 부녀는 은인인 김씨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은 알 수 없었다. 박씨 남편은 지난해 8월 심장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지만 숨을 거뒀다. 박씨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남편의 뼈와 연골, 신장과 피부 등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써달라며 인체조직 모두를 기증했다. 두 아들도 아버지 시신을 기증하던 날 장기기증 서약에 동참했다. 박씨는 사망 보험금 2500여만원도 남편 이름으로 형편이 어려운 환자의 수술비로 써달라며 병원에 기부했다.

이날 지씨 편지를 받은 병원 주선으로 만난 두 가족은 서로 사연을 주고받으며 눈물을 훔쳤다. 가족을 잃은 동병상련이었다. 딸 지씨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을 땐 아무도 받지 않는 엄마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건다"고 하자 박씨가 휴대전화 한 대를 꺼내며 "나 역시 남편 휴대전화를 버리지 않고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다. 박씨가 "딸이 없었는데 이제부터 엄마·딸 하면 되겠네. 내가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어"라고 말하자, 지씨는 "하늘에 계신 엄마가 더는 울지 말라고 어머니를 보내 주셨나 봐요. 앞으로는 어머니께 전화드릴게요"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