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환경보증금' 없앴더니… 다시 일회용품 물쓰듯

8일 낮 서울 명동의 한 커피전문점. 줄지어 선 10여명의 손님에게 매장 직원은 일회용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줬다. 매장 안 10여개 테이블에서 머그(mug)컵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단 두 명. 커피전문점이나 백화점에서 한동안 감소하던 종이로 만든 일회용품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2008년 들어 일회용컵(3월)과 종이백(7월)에 대해 부과하던 50~100원의 '환경보증금'이 폐지된 후 이런 현상이 한층 두드러지고 있다.

◆보증금제 폐지 후 일회용품 사용 2배 늘어

같은 날 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의류 매장에서도 대부분의 고객은 구입한 옷을 곧바로 커다란 종이 쇼핑백에 담았다. 매장 직원은 "환경보증금 제도가 시행될 때는 고객들이 쇼핑백 하나에 여러 물건을 담으려 했지만 지금은 두세 개를 겹쳐 사용하기도 한다"며 "서비스 차원에서 고객이 원하는 만큼 종이백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경보증금' 제도 시행 당시 일회용품 사용량은 감소 추세였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매장별 연간 일회용컵 평균 사용량을 보면, 2006년과 2007년에는 8만여개였으나 2008년 11만8400개, 지난해는 14만1900개로 급증했다. 2007년 41%였던 머그컵 사용 비율도 올해 13%로 떨어졌다.

할리스커피의 경우, 2006년 매장당 평균 1만4000개를 사용하던 일회용컵 사용량이 지난해에는 두 배 가까이(2만4000개) 늘었다.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머그컵을 씻고 관리해야 하는 인건비가 만만치 않은데다 소비자들도 여러 사람이 쓰는 머그컵의 위생 문제를 걱정하기 때문에 매장들은 일회용컵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서의 종이 쇼핑백 사용량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2006~2007년 연평균 종이백 사용량은 1100만여개였으나 2008년 7월 이후 사용량이 매년 평균 20%씩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도 2007년 339만개였던 종이백 사용량이 2008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425만개와 511만개로 늘었다.

◆일회용컵 사용으로 연간 20만 그루 잘려나가

일회용품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매장에서 분리수거돼 재활용되는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스타벅스의 경우, 일회용컵의 회수율이 45% 정도에 불과하다. 백화점의 종이 쇼핑백은 더 심각해 대부분 소비자가 가정에서 기껏 한두 번 더 사용하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일쑤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연간 사용되는 일회용컵은 10억개가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종이컵 4000여개를 만드는 데 20년생 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사용되는 일회용컵만을 위해 1년에 20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사라지는 셈이다. 사용 후 자연분해가 되지 않는 플라스틱컵이나 일회용컵을 감싸주는 종이 슬리브(sleeve)까지 포함하면 환경피해 규모는 엄청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일회용품 회수율 높이고 보상체계 강화해야

일회용품 낭비를 줄이기 위한 첫 번째 해법으로 전문가들은 개인용 컵이나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소비자에 대한 보상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할리스커피는 개인용 텀블러(tumbler·음료수를 마시는 데 쓰는 잔)나 머그컵으로 음료를 받아마시는 고객에게 가격의 10%를 할인해 준다. 스타벅스와 까페베네 같은 커피전문점들도 텀블러 사용 시 한 잔에 300원씩 깎아주거나 개인용 컵을 10번 이용하면 음료 한 잔을 무료로 주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종이 쇼핑백의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캐릭터 디자인 등으로 쇼핑백을 세련되게 꾸몄다.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2년간 매년 약 60만개의 친환경 장바구니를 고객에 제공하고 있다.

일회용컵 회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컵을 다른 매장에서도 환불해주거나 매장 내 일회용컵 회수대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원순환사회연대의 김태희 기획팀장은 "일회용품 재활용보다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보증금 제도 같은 강한 규제를 다시 제도화하거나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