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풀어주는 서울대 강좌… 수강생은 동료 교수

9일 오후 3시 서울대 학생회관 5층 대학생활문화원 집단상담실. 문이 닫히고 형광등이 꺼지자 어둑어둑한 방 가운데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고상근(54) 교수가 앉았다. 그의 좌우에는 서울대 교수 8명이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다.

"당신은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숲 속에 와 있습니다. 눈은 날아가는 하얀 새를 따라갑니다. 자,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편안하다…."

그의 안내에 따라 교수들은 눈을 감고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5분쯤 지났을까. "이제 돌아오겠습니다"라며 고 교수가 1부터 5까지 천천히 셌다. 누운 교수들이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나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앉았다.

고 교수는 재작년 가을부터 '교수를 위한 심신건강 증진 프로그램'이란 8주짜리 강좌를 학기마다 진행하고 있다. 동료 교수들이 수강생이다. 기수마다 10명 안팎이 찾아온다. 2006년 시작한 교수대상 리더십 프로그램을 포함하면 그는 '서울대 교수' 제자만 100명에 달한다. 이장무 전 서울대 총장(정년 퇴임)도 총장 선거 때 그로부터 연설법을 지도받았다고 한다. 그는 "연구 실적에 대한 압박과 '서울대 교수'라는 타이틀이 주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고 교수가 가르치는 것은 독일에서 개발된 이완 테크닉인 '아우토겐 트레이닝'. 일종의 서양식 명상법이다. '나는 편안하다' 등의 자기암시를 반복하다 보면 몽롱함을 느끼면서 이완 상태로 접어든다고 한다. 고 교수는 "깨어날 때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건 이완에서 벗어나 몸을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학기 수강생인 박훈 동양사학과 교수는 "언짢은 생각이나 그날의 연구 스케줄이 아침에 떠오르면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강박감을 느껴왔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의대 김웅한 교수(흉부외과학교실)는 "이완 테크닉을 수술 전후에 활용하고 있다"며 "의사로서 긴장과 스트레스가 심해 잠을 깊이 못 자고 깰 때가 잦았는데 그런 증상이 없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