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촉촉한 시선] 소리 뺀 음악영화… 이런 反轉을 봤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호평을 받기 어렵습니다. 우선 반전(反轉)으로 승부하기가 어렵죠. 이미 원작 만화의 내용에 익숙한 관객들을 배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평면적 각색만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랬다가는 뭐하러 영화라는 매체를 추가했느냐는 비난이 이어질 게 뻔하죠. 속된 말로 '잘해야 본전'. 그런 점에서 음악 영화 '벡'(18일 개봉)은 흥미로웠습니다.

10년 전 일본 음악만화 '벡'(헤롤드 사쿠이시 지음)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인디 밴드의 드러머였던 후배의 추천이었습니다. 한국의 예술가 중에서 가장 저주받은 존재가 인디 밴드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던 친구였는데, 가난한 영혼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인디 밴드를 주인공으로 삼은 만화가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둔 현상을 핏대 세우고 목청 높여 전파했죠. 2008년 34권으로 완결되면서 '벡'은 일본에서 1500만 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이 중 1권부터 10권까지의 내용을 다룹니다. 5명의 개성 강한 친구가 밴드를 결성해서 일본 최대의 록 페스티벌인 그레이트풀 사운드에 나가기까지의 악전고투를 그리죠. 이 악전고투의 중심에는 학교 왈패들의 빵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연약한 고교생 유키오(사토 다케루)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유키오는 재능이라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 보이는 소년입니다. 외모도 평범하고 식스팩 근육도 남의 나라 이야기며, 공부도 못하고 몸도 약하죠. 그런데 단 하나, 믿을 수 없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이 영화의 승부수는 바로 이 대목. 만화에서는 표현할 필요가 없었던 이 소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시각에 따라 지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벡'은 여기서 영화적 반전을 던집니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적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공개하자면, 바로 무대에서 공연하는 유키오의 목소리만 지워버리는 거죠. 만화에서도 일부 묘사된 바 있지만, 바람의 속도로 흘러가는 구름, 검푸른 밤하늘을 두 조각 내는 섬광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상투적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클라이맥스의 맥을 놓치지 않는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의 위력이 대단하더군요. '소리 없는 음악영화'라는 형용 모순, 뺄셈을 통해서도 덧셈이 가능하다는 역설을 입증한 대목이기도 하고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는 재미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원작 만화와의 비교에 있습니다. 소위 주인공들 사이의 싱크로율(닮음 비율)과 함께 창의적 영화 언어를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대한…. 그리고 이 '소리 없는 음악영화'라는 모험은, 앞서 그 인디 밴드 후배가 가장 부러워했던 '벡'의 대중적 성공 비결 중 하나로도 꼽힐 겁니다. 인디 음악 열혈 팬들에게는 게으른 선택이란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대중영화임을 선언하는 선전포고처럼 보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