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리 솔섬을 세계에 보여준 그, 이번엔 어떤 '한국'을…

사진가 마이클 케나(Kenna·57)가 한국을 찾았다. 영국 출신인 그는 현재 미국 시애틀에서 활동 중인 세계적 사진가다. 8x10인치짜리 흑백 작품 한 장이 5000달러(약 550만원)에 거래된다.

케나는 네 번째인 이번 방문에서 서울 공근혜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고, 내년 개인전을 위해 경주·용인·속리산으로 촬영 여행을 했다.

케나는 요즘 말로 치면 '구닥다리' 사진가다. 케나는 필름카메라를 쓴다. 주로 쓰는 카메라는 독일제 중형 핫셀블러드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해 풍경을 찍었던, '아득한 옛날' 카메라다. 작품 스케치를 할 때는 몇만원 안 되는 홀가(Holga) 카메라를 쓰다가 중요한 시점에는 이 둔탁한 카메라를 등 뒤에서 꺼내 든다. 홀가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엉성하기 짝이 없는 장난감 카메라다. 빛이 카메라 몸통 안으로 들어가기 일쑤여서 그는 카메라 외곽을 테이프로 꽁꽁 붙여서 쓴다. 필름은 오로지 흑백이다. 현상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본인은 촬영과 인화만 한다. 인화는 항상 8x10인치짜리 소형이다. 그 흔한 디지털 카메라는 한 대도 없다. 왜? "예술 같지가 않으니까"라고 했다.

"나는 아날로그다. 촬영부터 인화까지 손으로 이뤄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전통적인 것들은 시간이 걸리고 귀찮은 면이 많다. 바로 그 한계가 나는 참 감사하다. 서두르지 않고 나를 기다리게 해주니까." 사진이 예술이냐고? 그의 작품을 보면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케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피사체들은 대개 프레임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소나무 한 그루, 설원(雪原)에 꽂힌 기둥들, 무심히 날아가는 비둘기 아홉 마리…. 선적(禪的)이기도 하고 고독해 보이기도 한다. 1초 이상 셔터를 열어두는 장기 노출로, 움직이는 사물들은 흐릿하게 사라져버린다. 격랑(激浪)은 맑은 고요로 변하고 폭풍전야의 꿈틀대는 먹구름도 평화로운 하늘로 변신한다. 오직 움직이지 않는 사물만이 그의 네모난 프레임 속에 선명하게 빛난다. 케나는 이를 "작은 것으로 전체의 본질을 표현한다"며 "굳이 비유하자면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俳句) 같은?"이라고 했다.

그는 '움직일 수 없는' 본질을 포착하려고 사진을 택했고, 장기 노출 기법을 택했다.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형식으로 사물이 포착되니, 예술적 감성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어이없는 낯섦 앞에서 시선을 멈추게 된다.

2007년 방한 때 케나가 만든 작품이 '월천리 솔섬'이었다. 흐린 날 오전 삼척의 한 모래톱에 있는 송림을 찍은 이 작품으로 이 소나무숲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부근에 LNG기지 건설이 확정됐고,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삼척시는 "솔섬은 보존한다"고 했지만, 2010년 11월 현재 주변에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앞으로는 수평선 대신 원통형 가스저장탱크가 배경으로 들어서게 된다. 케나는 "그것참,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만 했다. 이번에 그는 솔섬을 다시 가서 찍었다.

철조망 쳐진 해안선, 해변 감시초소 등 한국에 대한 전형적인 서구 시각으로 기록했던 과거 작품과 달리, 이번에 케나는 경주 남산의 노천 석불과 법주사 불상을 촬영한 뒤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전혀 다른 한국의 미를 발견했다.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