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타악기 두드리니 쌓였던 분노 풀렸어요"

"문득 외롭다 느낄 땐 하늘을 봐요. 같은 태양 아래 있어요. 우린 하나예요."

11명의 청소년들이 손으로 북을 치면서 가수 유리상자의 '아름다운 세상'을 부르자 앞에 앉은 할아버지·할머니 16명이 "아이고, 예쁘다, 예뻐"를 연발하며 손뼉을 쳤다. 지난 9일 오후 2시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 원주재가노인복지센터 1층에선 원주보호관찰소에서 보호관찰을 받는 청소년들이 노인들을 위해 조촐한 음악회를 열었다.

소년범 중 소년원에 가기 전 단계의 처분인 보호관찰을 받는 아이들은 관할 지역 보호관찰소에 1주일에 1~3회 출석해 최장 2년간 상담·교육 치료를 받는다. 원주보호관찰소는 보호관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지난 7월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총회신학 원주캠퍼스 음악치료 전공 김혜경(44) 교수는 "타악기를 통해 쌓였던 분노나 스트레스를 풀고, 감정을 정화하는 프로그램"이라며 "오늘은 12주 과정 음악치료 중 마지막 단계로 그동안 연습한 노래를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선물하는 자리"라고 했다.

아이들이 노래하던 중 "여러분이 외로웠을 때를 생각하면서 가사를 음미해봐요"라고 김 교수가 말하자 여러 아이가 눈물을 보였다. 눈짓으로 '잘하자'는 신호를 보낸 박명원(가명·18)군은 원주보호관찰소 음악치료 교실 '반장'이다. 박군은 중학교 1학년이던 2005년 선배를 때려서 보호관찰을 받던 중 등록도 안 한 오토바이를 무단으로 타고 다니다 두 번째 보호관찰 판정을 받았고, 이번에도 무등록 오토바이를 타다가 지난 7월부터 세 번째로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 할머니·아버지와 살던 박군은 아버지와 갈등이 많았다. 연기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학원비를 주지 않는 아버지가 미워 틈만 나면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자취방에서 혼자 살아보라며 준 보증금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다녔다. 지난 두 번의 보호관찰은 받는 둥 마는 둥 했던 그가 이번에는 음악치료를 받고 '바른 생활 청소년'이 됐다. 박군은 "나도 모르게 변하더라고요. 아버지랑은 가끔 진지한 얘기를 나눕니다. 철없던 시절도 지났지요"라며 머리를 긁었다. 그는 보물 1호 오토바이를 팔고 이달부터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연을 마친 아이들은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장옥희(70) 할머니가 나와 제일 앞에 서 있던 강혜원(가명·16)양의 손을 꼭 잡아줬다. 강양은 "처음 본 저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해 주시니 아주 좋아요"라며 장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할머니가 등을 쓰다듬으며 "기특하다"고 하자 강양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강양은 "선배들 욕을 하고 다닌다"며 친구들과 한 후배를 집단폭행해 지난 9월부터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택시기사 일을 해 얼굴을 거의 볼 수 없고, 어머니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원주 문막읍에서 식당일을 해 1주일에 두 번만 집에 들어온다고 한다. 1년 전 가출해 선배 집을 전전하던 강양은 음악치료를 받으면서 확 달라졌다. "노래 부르고 선생님들과 많은 얘기를 하면서 화가 다 풀린 것 같아요. 화를 참지 못하고 후배를 때린 것도 후회돼요." 중학교 1학년 때 중퇴한 강양은 내년에 다시 중학교 1학년으로 복학할 계획이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강양은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복학하면 머리도 다시 까맣게 염색하고 학교 잘 다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