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다… '오스카' 노리는 黑鳥의 눈빛

할리우드의 '오스카 광풍'이 조금 일찍 시작됐다.

13일(현지시각) 미국 LA 할리우드 대로에 있는 판타지 극장에서는 대런 아로노프스키(Aronofsky·41) 감독이 연출하고 나탈리 포트먼(Portman·29)이 주연한 새 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공식적으로는 12월 3일 미국 개봉을 앞둔 자리였지만, 이날 기자회견에는 미국뿐 아니라 일부 해외 언론까지 초청됐다.

제작사인 이십세기폭스의 해외 언론 홍보 담당인 아만다 존슨(Johnson)은 "영화의 (수상) 가능성을 크게 본 경영진에서 급히 참석 범위를 확대했다"면서 "국내외 언론이 함께 참석하는 기자회견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했다.

여우주연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나탈리 포트먼은 "오스카 가능성은 영광이지만, 벌써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솔직히 과찬(flattering)이라고 생각한다"며 겸손을 보였고, 감독인 아로노프스키는 기자회견 단상에 놓인 수십 개의 녹음기를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며 "이런 기념비적인 순간을 먼저 기록해둬야겠다"고 익살스럽게 대답해 웃음을 이끌어냈다.

전날인 12일 이십세기폭스 본사에서 공개된 '블랙 스완'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왜 그리 높은지를 입증하는 수작(秀作)이었다. 발레 '백조의 호수'의 관능적 흑조(黑鳥) 이름으로 제목을 지은 '블랙 스완'은 자신의 몸이 흑조로 변해가고 있다는 망상에 빠진 발레리나 니나(나탈리 포트먼)에게 초점을 맞춘 심리 스릴러. 뉴욕시립발레단의 새 주연으로 발탁된 니나는 '백조의 호수' 첫 공연을 앞두고 완벽을 꿈꾼 나머지 극심한 망상과 강박에 시달린다. 우아함과 순수함을 갖춘 '백조'의 이미지 때문에 뽑혔지만, 관능적이고 사악한 '흑조'의 이미지가 부족했기 때문. 이 영화에서 아로노프스키가 지휘하고 포트먼이 연주하는 신체와 감정의 스펙트럼은 경이로울 정도로 넓은 범위에 펼쳐져 있다.

보통 함께 거두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는 이 두 상반된 성취에 관한 질문에 포트먼은 때로는 진지하게, 또 때로는 유머와 과장을 섞어 이야기했다. 십대 초반 '레옹'으로 영화계의 신데렐라가 되기 전까지 실제로 포트먼은 발레를 배웠다고 했다. "열두 살에 그만뒀으니까 15년 만에 이 영화를 위해 토슈즈(발레용 신발)를 신었다"면서 "열 달 동안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처음 반년 동안은 하루 두 시간씩, 다음 두 달은 하루 다섯 시간, 나머지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춤을 췄다"고 했다. 그러고는 "스물일곱 살에 발레를 다시 시작한다는 게 신체를 얼마나 혹사시키는 일인지 여러분들은 모를 것"이라고 말하며 싱긋 웃었다.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덕에 그에게는 늘 '지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따라붙는다. 니나의 성격에 대한 질문에는 "전문적인 분석을 말씀드리자면…"이라고 뜸을 들여 기자들의 폭소를 자아낸 뒤 발레와 연기를 종교에 비유했다. 영화에서 강조되는 장면 중 하나인 니나와 예술감독(뱅상 카셀)의 애증관계를 신과 인간으로 대치시키고 그 둘 사이를 헌신(devotion)이라는 용어로 정리하면서, 이런 관점에서 감독과 배우 역시 같은 관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강박(compulsion)과 집착(obsession)의 쳇바퀴에 갇혀 있는 존재"라면서 "운이 좋으면 한 분야의 대가(virtuoso)가 되겠지만, 잘못되면 자기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빚게 되는 것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블랙 스완'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전작(前作)이 미키 루크를 할리우드에 복귀시켰던 '레슬러'(2008)였기 때문이다. 실패를 예감하는 퇴물 레슬러의 마지막 승부와 미키 루크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이 포개지면서 그해 베니스영화제 황금곰상과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 등 20여 개 트로피를 휩쓸었던 작품이다.

어쩌면 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 예술을 그려냈던 감독이 소위 가장 고상하다고 여겨지는 신체 예술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그 선택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감독은 "(영화 속) 미키 루크와 나탈리 포트먼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가진 것이 육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면서 "내게 흥미로웠던 대목은 서로 완전히 다를 것 같은 세계가 사실은 표면 아래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두 영화는 형제이자 한 몸"이라고 했다.

'블랙 스완'은 2011년 2월 27일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꿈꾸며 3주 뒤 미국에서 개봉하고, 한국에서는 그 후광을 꿈꾸며 내년 2월 말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