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한국 방방곡곡… 세계적 사진가, 뭘 찍어왔을까

17일부터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개인전 〈Korea 2007~ 2010〉는 한국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독일 출신인 스트루스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로부터 회화를, 베른트 베허로부터 사진을 각각 배웠다. 스트루스는 1980년대 뉴욕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도시를 담은 '도시 풍경'과 '가족 초상' '뮤지엄' 시리즈 등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작가는 1986년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8시간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당시 한창이던 아파트 건설 붐과 올림픽경기장을 보았다. 그는 엄청난 대단지 아파트에 이름과 번호가 붙는 것이 신기했고 한국만의 독특한 활기를 느꼈다. 스트루스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객관적 관찰과 예술가적 감수성을 발휘해왔다. 이번에 갖는 국내 첫 개인전에서 지난 3년간 담아온 한국에 대한 기록을 내놓은 셈이다.

대단지 아파트를 거대한 모습으로 찍은 〈파크뷰 아파트〉는 신전(神殿)처럼 웅장하게 들어선 아파트와 주변의 땅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욕망을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아파트라는 획일화된 주거환경에 살면서 얼마나 만족하고 희망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파크뷰 아파트〉처럼 도시 풍경을 보이면서 외관에 표현되는 그 사회의 심리와 정치적 내면을 읽어내고자 했다. 단순한 고층 빌딩이나 도로가 아니라 그 속에 사는 구성원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양양(강원도)〉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동해에서 흔히 본 풍경이지만, 모래사장 위에 쳐진 철조망이 남북한의 대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스트루스는 "여유와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해변에 철조망이 쳐져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철조망이 상징하는 정치 상황과는 별개로 그 주변에 펼쳐진 나무와 수평선은 자연과 끝없이 이어지는 역사를 나타낸다. 작가는 남과 북의 군사적 대치 상황 속에서 무심히 흐르는 시간과 자연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했다.

〈칠형제봉〉은 설악산의 공사현장을 찍은 작품으로, 작가의 예민한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다. 공사판 위로 펼쳐진 산의 아름다운 모습은 동양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설악산 칠형제봉을 보면서 플랑드르 화가였던 17세기 브뤼겔의 겨울 풍경처럼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트루스는 작품을 통해 인간이 이룩해온 기술 발전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는데, 우주기지같이 일반인의 접근은 어렵지만 첨단 기술 발전을 볼 수 있는 곳을 담아왔다. 거제도 조선소에서 촬영한 〈반잠수식 해양 시추선〉은 작품을 보는 순간 스케일에 압도당한다. 거대한 굴착 장치의 붉은색과 배경이 된 바다·산의 푸른색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가운데 밧줄과 철제 장비가 전체의 거대한 규모를 가늠하게 해준다.

〈한진 신항만〉은 항구에 끝없이 펼쳐진 컨테이너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지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인간의 욕망이 충족된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도 함께 던진다.

북한을 방문했던 작가는 "독재자는 다른 나라에도 있었지만 북한처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독재는 없는 것 같다"며 "보고 있는 것만으로 슬프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스트루스의 작품에는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고 자연과 기술, 기술과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작가는 "사진이란 역사의 필터와 같은 것으로, 여러 역사를 합쳐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9일까지 이어진다.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