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고 굴러… 이 작품의 끝은?

최인수 서울대 교수의 조각 작품 〈태고의 바람〉은 작가의 두 손에서 태어났다. 거창한 도구를 사용하거나 규모를 크게 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두 손으로만 만져 완성한 작품이다. 소중하게 흙을 쥐었던 순간은 태고(太古)가 탄생한 순간으로, 작가는 위대한 창조자였다. 작품에서 손의 온기와 호흡을 가다듬었을 순간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작품 〈길〉은 유희적이면서 명상적이다. 작가는 "어린아이가 자동차 바퀴를 굴릴 때 책상 위와 사람 몸 위를 거침없이 지나다닌다"면서 "이때 새로운 공간이 창조된다"고 말했다. 어린아이의 굴리기 행위처럼 작가도 굴리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흙을 굴려 만든 공을 통해 길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축적된다. 흙은 석고틀을 거쳐 철로 거듭났다. 공은 언제든 다시 구를 것 같은 동적(動的) 행위가 내재돼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철로 만들어진 작품이 녹슬어 없어질 때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 〈시간이 태어난다〉는 관람객이 작품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4개 면을 감상하게 된다. 작가는 각기 다른 면을 통해 시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고자 했다. 다른 면들을 하나의 조각 작품 안에 만들어 여러 시간이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조각 작품과 함께 전시된 작가의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드로잉 〈천천히〉는 색을 섞지 않고 각각 존재하는 색을 통해 생각마저 마구 섞이는 현실세계에서 한발 떨어지고자 했다.

한옥을 전시장으로 꾸민 공간과 작품이 잘 어우러진다. 전시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트링크 서울에서 30일까지 열린다. (02)738-0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