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될 날 기다리다 벌써 환갑이네요"

"영희 언니! 환갑 축하해요!"

1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의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특별한 환갑잔치가 열렸다. 이곳은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겨진 아이들 가운데 아직 입양되지 않은 '대기아' 250여명이 사는 곳이다. 대부분 너무 많은 나이에 맡겨졌거나, 신체장애 때문이다. 비교적 건강이 나아지고 있는 아이들 중심으로 1년에 1~2명 정도 입양되고 있다.

이날은 8살에 이곳에 맡겨진 '왕언니' 김영희(60)씨가 환갑을 맞은 날이다. 김씨는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다. '1950년 11월 15일생, 1958년 11월 2일 입소,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음.' 김씨에 대한 최초 기록은 이 짧은 문장이 전부다. 김씨가 할머니 손에 이끌려 홀트에 맡겨진 지 52년. 올해 재단설립 55주년을 맞은 홀트아동복지회 원생 중 최고령자이자 일산타운의 최장기간 거주자다. 입양될 날만을 기다리다가, 그러곤 포기한 채로 어느덧 환갑을 맞았다.

"영희 누나! 더 건강하게 우리랑 오래오래 잘살아요." 몸이 불편한 원생들이 힘겹게 축하 인사를 하며 꽃다발을 건네줬다. 곱게 한복을 입고 화장까지 한 영희씨는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휠체어 위에서 자그마한 몸을 조금씩 펴며 인사를 받았다.

김씨의 처음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1956년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 땅에 찾아와 봉사활동을 시작한 말리 홀트(75)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도 나중에야 부모님을 통해 영희씨 존재를 알았다.

홀트씨는 "영희가 8살에 처음 왔을 당시 나이가 많은 편인 데다가 장애로 말을 제대로 못해 입양이 안 됐다"며 "입양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아는 부모님은 누구보다 영희씨를 아꼈다"고 했다.

김씨의 삶은 단조롭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며 음악을 듣고 TV를 본다. 홀트씨 가족을 친부모로 생각하며 52년을 살아왔다. 30여년째 매주 일요일 홀트씨와 서울 교회로 예배보러 가는 게 큰 즐거움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말이나 손수건 등 동생들 생일 선물을 챙기거나 1주일분 간식을 사오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이날 모인 200여명 원생과 보육사들은 김씨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정리한 영상자료를 보며 함께 웃었다. 10대 소녀 시절부터 최근 모습까지 소풍을 가거나 체육대회를 하며 찍었던 사진은 배경과 옷만 바뀌었을 뿐 환한 미소는 그대로다.

"15년 전 내 회갑 때 영희가 불편한 몸으로 카드를 들고 왔어요. '축 생일. 사랑합니다'라고 삐뚤 빼뚤 쓴 카드였어요. 그런데 이제 주름도 늘고 영희도 할머니가 다 됐네요."

홀트씨가 김씨의 머리를 쓰다듬자 김씨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한 방에서 생활하는 동생들이 김씨의 말을 '통역'했다. "그동안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 말리 언니랑 선생님들, 언제나 따뜻하게 돌봐주어서 정말 고맙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