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정서 흐르는 대폿집 기록해 두고 싶었죠"

"대폿집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대중문화의 커다란 원형을 품고 있는 곳들인데요. 모두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전국 대폿집을 누비고, 술을 마셨지요."

화가 사석원(50)씨는 2012년 전시를 위해 전국 각지의 명폭포를 답사하던 중 대폿집을 '재발견'했다.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것이 '풍류'라고 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지만 술과 함께 정(情)이 익어가는 대폿집이 창작에 자극이 돼준 것이다. 그는 열 아홉곳 명(名)대폿집을 소개하고 여기에 60여 점의 그림을 그려 '막걸리 연가'라는 책을 펴냈다. 300개 노점이 늘어선 서울 광장시장, 연탄불에 도루묵을 구워내는 할머니 주모가 있는 '대구 도로메기집'…, 대폿집 풍경과 함께 그곳을 거쳐 간 문화예술인들을 추억하는 책이다.

"우리 민족 예술의 근간이 바로 풍류예요. 그게 가장 잘 녹아 있는 곳이 대폿집이고요. 경계가 없는 공간이에요. 좁은 공간에서 술 마시다 합석도 하니 너와 나의 경계가 없죠. 주인과 손님, 식당과 술집의 경계도 없고요. 한잔 거나하게 마시면 노랫가락으로 하나 되니 술집과 무대의 경계도 없습니다."

인터넷에 소개된 대폿집들도 가봤지만 대부분 '실패'였다. 지인에게 소개받거나 지방 양조장을 찾아가 추천받은 곳들이 그나마 나았다. 어떤 곳은 그 집만의 독특함을 잡아내려고 열 번 넘게 가보기도 했다. 음식 맛, 주모 마음씨, 손님들 입담, 이 삼박자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곳은 전라도의 대폿집들이었다. 그런 곳에서 정말 놓칠 수 없다 싶은 풍경을 잡았을 때는 술자리에서 글을 썼다. 너무 취하면 옆 테이블 손님에게 기록을 부탁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없어진 전설적 대폿집 '은성'에 가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했다. 배우 최불암씨 어머니가 운영했던 은성은 지금도 명동에 '은성터'라고 새긴 비석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거기서 술 마시다가 죽은 문인도 여럿 있다고 한다.

"대폿집은 서울엔 강북 몇 군데 빼고 다 없어졌어요. 서울 강남, 경기·충청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호남에 그래도 많이 남았어요. 인생의 멋과 맛을 중시하는 곳이라 그런 듯합니다."

다행히 막걸리 붐이 일면서 최근엔 신생 대폿집들이 생기고 있다. 예전처럼 정이 넘치는 곳은 아니지만 나름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대폿집, 막걸리를 거쳐 그가 다루고 싶은 '한국인의 풍경'은 1960년대 대중문화다.

"경제 성장이 이뤄지기 전 도시화·상업화의 영악함이 있기 전 우리네 따뜻함이 살아있는 시대입니다. 검열이 본격화되기 전이라 대중문화가 가장 활발한 때이기도 했어요. 영화·음악·미술 모두요. 사회 전반에 희망의 정서, 긍정이 팽배했던 그 시대를 기록해 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