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영웅들의 희생, 후배들은 기억합니다"

1990년 12월 12일 새벽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앞바다의 작은 섬 하왕등도 인근 해역에 공군 구조헬기 한 대가 추락해 장병 6명이 전원 실종됐다. 위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하왕등도 주민 1명을 응급 수송하기 위해 광주 비행기지에서 출동한 구조대원들이었다. 당시 하왕등도 근해는 3~5m의 높은 파도와 초속 20~30m의 강풍이 몰아치는 악천후였다. 헬기는 한 차례 착륙 시도를 실패한 뒤 섬 주위를 선회하다 갑자기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17일 오전 충북 청원군 제17전투비행단 내 공군 제6탐색구조비행전대에 당시 순직한 대원들의 유가족 4명이 부대를 방문했다. 부대 앞에는 전대장을 비롯해 부대 장병들 20여명이 기다리다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유가족들은 부대에 대한 소개와 부대원들의 훈련 장면 등이 담긴 비디오를 보고 부대 안을 돌아보면서 20년 전 순직한 남편과 아버지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날 유가족 초청 행사는 이 부대 항공구조대 소속 강용수(50·부사후125기) 준위의 제안을 전대장인 위강복 대령이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지난 26년 동안 항공구조대원으로 활동하면서 133명의 생명을 살려내 '공군의 수호천사'로 불리는 강 준위는 국방부와 조선일보가 올해 공동 제정한 위국헌신상 '용기 부문' 수상자다. 강 준위는 위국헌신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 1000만원 중 625만원을 이날 유가족 위로금으로 내놓았다.

강 준위는 "상을 받는 순간 당시 사고 때 숨진 동기 고(故) 김종업 상사를 비롯해 국립현충원에 누워 있는 동료 구조대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면서 "그동안 줄곧 그분들의 유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유가족 초청이 결정되자 강 준위는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초청 편지를 썼다. '하왕등도 응급환자 구조를 위해 긴급 출동했다가 조국의 품으로 산화한 아름다운 영웅들의 희생을 우리 6전대원들은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선배 전우님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정신을 우리 후배들이 이어받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날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뭉클한 표정이었다. 고(故) 최세혁 중령의 부인 유문숙씨는 부대원들을 위해 떡을 만들어왔다. 유씨는 "(사람들이) 이미 모두 잊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편을 기억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4살이었던 고 김종업 상사의 딸 아영씨는 "아빠가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오늘에야 알게 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故) 최철호 중사의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이 살아 돌아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며 "아들이 탔던 헬기 소리를 듣기 위해 헬기가 많이 다니는 경기도 신갈지역에 이사 가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