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일곱살의 돈키호테

"올해 일흔일곱인데 더 나이 들면 힘 빠지고 기억력도 떨어져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체적인 조건은 돈키호테답지 않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정신입니다. 40~50년 전 연극의 꿈을 처음 키웠던 명동극장 무대에서 이 연극을 하게 돼 영광입니다."

주인공으로서 한 연극을 책임질 수 있는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는 "배우로서 여기저기 일을 쫓아다니다 보니 이 나이까지 무대에 설 체력이 된다"고 했다.

연극 '돈키호테'(12월 10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 개막에 앞서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돈키호테는 무협소설을 비롯해 독서를 많이 해서 정신착란에 걸린 인물이지만, 불의(不義)와 싸우고 약자를 돕고 사랑에 모든 걸 바치는 영웅"이라면서 "햄릿이 우유부단하고 고뇌하는 인물이라면, 돈키호테는 단순하고 소년 같지만 직선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이순재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배우의 길을 택했다. 부친은 나중에 "어떤 일이든 일류가 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겠지. 열심히 하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 공연장과의 인연도 깊다. 이순재는 1958년 이진순 연출의 '시라노 드 베르주락'에서 단역으로 명동극장 무대를 처음 밟았다. 1971년엔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 시라노 역을 맡았고, 39년 만에 돈키호테로 이 무대에 선다. '사랑이 뭐길래' '지붕 뚫고 하이킥' 등 TV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해온 그는 1950~60년대를 회상하며 "연극하면서 돈을 받은 적이 없다. 탕수육에 배갈(고량주) 먹고 끝이었다"며 허허 웃었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빅토리앙 사르두가 쓴 희곡을 양정웅이 연출한다. 고전을 재해석하지 않고 희곡에 충실하면서 희극적으로 푼다. 이순재는 "돈키호테가 일상적일 때와 공상할 때의 조화, 균형이 절묘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명구가 돈키호테 역을 나눠 맡고 박용수가 산초로 출연한다.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