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그로기 狀態

〈제10보〉(131~140)=1994년이었던 것 같다. 신예 프로들로 구성된 일본 연수단이 교류전을 위해 권갑룡도장을 찾았다. 권 七단은 일본 인솔자에게 아직 아마추어였던 이세돌과 최철한도 호선(互先)으로 두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요즘과 달리 일본 바둑이 큰소리 치던 시절이었다. 이 '파격'은 권도장의 '투톱'이 호선으로 방문 손님들을 몽땅 때려눕히는 것으로 끝났다. 이세돌은 이듬해, 최철한은 3년 뒤 각각 12살의 나이로 입단했다.

과연 흑은 상변을 일단 내버려두고 131로 뻗는다. 이 한 수로 우중앙 백 11점은 운신할 수 없는 모습. 흑133엔 훗날 '가'로 빠져 중앙 백마를 계속 괴롭히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복싱으로 말하면 완벽한 그로기 상태인데, 그러나 바둑은 복싱과 달라서 스스로 수건을 던져 넣지 않는 한 대국은 계속된다.

백의 유일한 노림은 좌하 중앙 일대 흑의 삶을 추궁하는 것. 134는 일단 공격의 급소다(참고1도 1은 6까지 백의 실패). 흑도 쉽지 않은 대목이었는데, 138의 대완착 덕분에 그냥 살아버렸다. 138로는 참고2도 1의 파호(破戶)가 최선으로 15까지 패(覇)를 내는 수단이 있었다(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