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재테크 팀장의 '알뜰 리포트'] 수렁에 빠진 車보험, 선량한 소비자는 운다

적자에 시달리던 자동차 보험사들이 최근 보험료를 최대 7% 올리는 강수(强手)를 뒀다. 가뜩이나 생활 물가가 크게 뛰어 생계가 팍팍해졌는데 보험료까지 치솟으니 소비자들은 영 달갑지 않다. 이달 초 차보험을 갱신한 회사원 김모(40)씨는 "지난 1년간 사고 한 번 내지 않았는데 보험료가 45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랐다"며 "차 값은 싸지고 무사고인데 보험료는 비싸지다니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사들이 내세우는 가격 인상 명분은 '손해율'에 있다. 손해율이란, 보험사가 고객들에게 내준 보험금을 고객이 보험사에 낸 보험료로 나눈 값을 말한다. 손해율이 높을수록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했다는 뜻이다. 대형 보험사들은 예상 손해율을 72% 정도로 잡고 보험료를 산출한다. 보험료로 100원을 받으면 보험금은 72원 정도만 지출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보험사들의 예측을 뒤엎고 보험금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지난 4~10월 기준 평균 손해율은 79.6%로, 최근 5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손해율이 90%를 넘어선 보험사들도 상당수다. 보험사들은 지금이라도 차보험 체질을 전면적으로 고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는 계속해서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손해율이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질 요인들만 산적해 있다는 이유에서다.

◆190만원짜리 선물세트 등장

주부 곽수영(35)씨는 최근 차를 고치러 갔다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정비업소 사장이 "사모님, 추가 비용 없이 새 차로 만들어 드릴까요" 하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곽씨가 머뭇거리자 사장은 "200만원까진 보험료가 할증 안 되니까 190만원에 맞춰서 싹 갈면 된다"면서 갑자기 대못을 꺼내 차 문을 좍 긁었다. 곽씨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새 차처럼 변했으니 좋긴 한데 찜찜하긴 하다"고 털어놨다.

이득로 손해보험협회 상무는 "올해 차보험 할증 기준 금액이 200만원으로 높아지면서 정비업소만 신이 났다"면서 "운전자들에게 190만원짜리 선물세트라고 소개하면서 대대적인 수리를 유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은 올해 유독 손해율을 악화시킨 주범으로 제도적인 요인들을 꼽는다.

첫째, 금융당국이 올해부터 차보험 할증 기준 금액(보험으로 처리해도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는 기준)을 기존 5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까지 높였는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역풍(逆風)을 맞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7월 할증 기준을 200만원으로 선택한 운전자의 손해율은 87.9%로 50만원을 선택한 운전자보다 5%포인트 이상 높았다.

둘째, 2008년에 이어 지난해 정부가 단행한 법규 위반자 사면(赦免) 조치도 올해 보험사들의 손해율을 갉아먹은 요인 중 하나다. 보험사 관계자는 "교통 법규를 위반해도 언젠가는 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경찰 단속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운전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법규 위반자들의 안전 운전 불감증은 일반 운전자들의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진다.

셋째, 운전 중 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를 시청하는 것은 만취 운전만큼 위험한 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고 있는 것도 손해율 악화 요인으로 꼽혔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국내에 보급된 차량용 DMB는 607만대로, 전체 등록 차량 대수의 3분의 1을 넘는다. 일본·영국 등 교통 선진국은 운전 중 DMB 시청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관련 법률 개정안이 작년 5월 국회에 제출된 이후 아직까지 잠자고 있다.

◆보험금 누수(漏水)

최근 차 보험사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은, 교통사고 관련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면서 손해율이 올라간 데 따른 후유증이다. 보험사들이 내준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나다 보니 일반 운전자들이 내는 보험료 부담이 커지면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통상 보험회사들의 손해율이 1%포인트 올라가면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보험료도 1.4% 안팎 비싸진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약 1800만명)의 자동차 보험료 평균이 65만원 정도이니까 9100원 정도 부담이 무거워지는 셈이다. 특히 악덕 운전자와 병원·정비업체·설계사 등이 관여한 악성 보험사기는 손해율 증가를 더 부채질하며, 부당하게 지급된 보험금 부담은 일반 운전자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으로 선의의 운전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을 막으려면 보험시장을 훼손하는 도덕적 해이를 근절할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들이 보험료 인상을 납득할 수 있게끔, 보험사들이 앞장서서 서비스 개선이나 신상품 출시 등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험 관련 시민단체들이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관리를 허술하게 해서 보험금이 새는 것인데, 무조건 불량 운전자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