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무료로 가르치는 할머니

    입력 : 2010.11.20 03:15

    78살 강옥아씨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17일 서울 등촌동의 15평 남짓한 주민문화공간 '만나요, 우리도서관'. 강옥아(78)씨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강씨가 "저번 시간에 배운 거 복습해야죠. 아침 인사는 뭐라고 했죠?"라고 하자, 앞에 앉은 50대 여성이 "곤니찌와"라고 했다.

    강씨는 지난 7월부터 이곳에서 주민들에게 무료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부터 2시간이다. 그는 여의도·용산·압구정·신촌에서도 직장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친다. 강의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강씨는 일제 강점기에 고향인 경남 하동군의 진정소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그리곤 해방 후인 진주여중 3학년 때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모교인 진정국민학교로 부임, 일본에서 살다가 귀국한 학생들에게 방과 후에 우리말을 가르쳤다. 강씨는 "해방되면서 일본에 살던 동포들이 돌아왔지만 그 아이들은 우리말을 몰랐다"며 "나도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엔 일본어를 배운 적 없지만, 일본어를 잊지는 않았기에 그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수 있었다"고 했다.

    1966년 강씨는 서울로 왔다. 생활비, 그리고 아들·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일본어 과외에 나섰다. 자녀들이 결혼한 10년 전부터는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에 온 일본인들을 위해 통역봉사에 나섰고, 대통령이 주는 봉사상까지 받았다. 강씨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나눌 수 있으니 이게 행복인 것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