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눈 안 보이는 제가 총주방장 됐어요"

"밥 굶을 걱정 없을 것 같아 중국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요. 음식배달 다니고 양파 까면서 요리를 배워봤는데, 호텔 총주방장이 됐네요."

내달 초 오픈하는 전남 순천시의 에코그라드호텔 총주방장 차재용(31)씨는 선천적으로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부딪히기 일쑤였다. 그는 부모가 이혼할 무렵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왔다. 그는 "거실에서 부모님이 싸우면서 서로 날 맡지 않겠다고 떠넘기는 소리를 들었다"며 "다음 날 아침 짐을 챙겨 나왔다"고 했다. 서울로 온 차씨는 서울 서초구의 한 중국요릿집에서 일했다. 1년 정도 일하는 동안 그를 눈여겨본 사장이 호텔에서 요리를 배워보라며 한 호텔에 추천해줬다. 그렇게 차씨는 1997년 서울 광진구의 한 호텔 주방에서 조리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는 윗사람이 '넌 손끝이 무뎌서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분했죠." 차씨는 그 뒤로 항상 수첩과 펜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다른 요리사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봐 뒀다가 화장실에 가서 수첩에 요리법을 옮겨 적었다. 그리곤 새벽 2시까지 요리 연습을 했다.

요리대회에도 참가하게 됐다. 2003년 서울세계음식박람회에 채소조각 부문과 양식코스요리 부문으로 출전하게 된 그는 담력을 키우기 위해 길거리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실전처럼 당근, 무를 깎기도 했다. 그 결과 두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고, 그해 인천의 해외 체인 호텔에서 1급 조리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차씨는 "해외 유수의 호텔학교를 나온 요리사들 가운데서 일을 하다보니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선입견이 늘 신경쓰였다"고 했다. 그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영어 단어장을 갖고 다니며 수시로 단어를 외웠고, 새벽에는 영어회화를 공부했다. 중국 요리를 배우려면 중국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홍콩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영어와 중국어, 이탈리아어 등 3개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장애도 있고, 집을 나와 혈혈단신 살아왔지만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씨는 2006년에 친구 소개로 만난 부인과 결혼해 이듬해 딸을 얻었다. 그는 "가난한 요리사를 남편으로 맞아 준 아내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아내와 딸을 위해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2009년 미얀마 샹그릴라 호텔에서 방켓(연회 주방) 책임자로 근무하던 차씨는 올해 8월 귀국해 에코그라드호텔 총주방장을 맡아 레스토랑과 연회장을 총괄하고 있다. "조리도구만 쥐던 손에 서류를 들고 다니니 어색해요. 처음 맡는 일이라 실수할 때도 많지만, 새로 시작하는 느낌으로 열심히 해보렵니다." 밝게 웃는 차씨의 손에는 지난 10여년 동안 악바리 근성 때문에 입게 된 화상 자국들이 훈장처럼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