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스님이 토굴에서 가시오갈피 달이는 이유는…
입력 : 2010.11.20 04:49
네팔 젊은이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영봉 스님
수행 위해 설산 올랐지만 짐꾼들에게 항상 미안 마음의 짐 털고자 학교 세워
가시오갈피는후원자들에게 보낼 답례품
히말라야 고봉을 등정하고, 네팔에서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영봉 스님(본지 8월 31일)이 지난달 중순 입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토굴에서 가시오갈피를 달이고 있다고 한다. 스님이 웬 건강식품. 찾아가 보기로 했다.
스님의 거처는 강원 강릉 왕산면 대기리의 한 '토굴(土窟)'. 8일 오후,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안내하지 못하는 산 속 좁은 차로를 구불구불 달려 그 흙집에 닿았다. 추운 산 속 방 세 칸, 부엌 한 칸짜리 집 옆에 가시오갈피 밭(6611㎡·2000평)이 있었다. 첫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빨리 덮어야겠네. 보름 동안 말렸는데!" 집주인 영봉(靈峯) 스님이 급하게 비닐 장막으로 마당 전체에 깔려 있던 가시오갈피 더미를 덮었다. "이게 다 토종이에요. 거름, 농약 안 치고 키웠지. 보름 동안 350병(1.8ℓ) 달였는데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어요. 젖으면 안 되는데." 마당 뒤편에서 커다란 약탕기 3대가 번쩍거렸다.
영봉 스님은 2년 전 네팔 카트만두 젊은이에게 무료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세종한국문화언어교육원'을 세웠고, 올 10월엔 카트만두에서 버스 타고 하루 종일 달려, 거기서 또 나흘을 걸어야 닿는 마을에 셰르파(Sherpa) 자녀 100여명을 위한 어린이학교를 만들었다. 또 3년 전부터 미얀마를 탈출한 소수민족 어린이들에게 500만원을 부치고 있다.
교육원과 어린이학교 운영비, 기부금으로 스님이 쓰는 비용은 연간 5000만~6000만원. 신도와 지인 40~50명이 알음알음 보탠다. 스님이 매년 가을, 두달간 가시오갈피 즙을 달이는 건, 후원자들에게 보낼 답례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운영비를 생각하면 늘 조마조마해요. 빚도 지고, 신경 쓰니까 밥이 잘 안 넘어가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건 산에서 나는 약초, 버섯 캐서 도와준 분들에게 보내는 일이에요. 5년 전부턴 가시오갈피 밭을 일궜어요. 신도들이 즙이 진해서 좋다고 해요. 하하."
17세에 출가한 영봉 스님은 1985년 "고고한 승려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서" 선방을 떠나 전국을 떠돌았다. 떠돌고 떠돌다 일본에도 갔다. "3년간 '만행(萬行·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갔어요. 일본 오사카에서 낮에는 고분발굴현장에서 막일 하고, 밤에는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본에서 1년 반쯤 지내니 1000만원이 모였다. 이 돈으로 다시 중국, 홍콩, 태국, 네팔을 거쳐 인도, 부탄, 티베트를 돌아 강원도 토굴로 돌아왔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좀 가시는 듯했다.
1988년 처음 네팔의 칼라파타르(5545m)를 시작으로, 1990년 다시 네팔 메라픽(6476m) 정상에 올랐다. 이번엔 일종의 '등정 수행'이었다. 그러다 1994년에는 법명을 '해종(亥宗)'에서 '영봉'으로 바꿨다.
"메라픽을 오른 게 알려지면서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방송 영상을 찍는데, 같은 언덕에서 열번을 다시 내려와달라고 하고, 땀도 안나는 데 얼굴에 물 뿌리고 다시 찍고… 이렇게 하다 보니 수행이 안 되겠다 싶었고, 숨어 지내려고 이름을 바꿨어요." 그 후론 그저 조용히 산에 올랐다.
2005년 그가 네팔을 다시 찾기로 한 것은 '포터(porter·짐꾼)'때문이다. "3~4개월 걸리는 정상 공격에 나설 땐 셰르파뿐 아니라 요리사, 짐꾼 수백명을 동원해요. 내 깨달음 때문에 무거운 짐을 30~40㎏씩 메고 걷는 짐꾼을 보면 안타까웠어요. 가난을 대물림한 짐꾼이 당장 '어깨가 끊어지는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죠."
그래서 세운 게 무료 한국어교육원. 3층짜리 건물(200평)을 빌려 사람들을 모았다. 3개월 과정의 한국어 교육을 2차례 정도 받고 나면, 젊은이들은 더 이상 짐을 들지 않고도 한국인 등반객의 '가이드' 역할을 할 수준이 된다. 이 교육원을 나온 청년 둘은 네팔의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EPS-KLT)에 합격해 현재 거제도와 안동에서 일하고 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2주간 토굴에서 스님 일을 도왔던 여성 산악인 남난희(53) 대장이 경남 하동 자기 거처로 떠날 채비를 했다. 스님이 말했다. "오늘은 눈도 오고, 사람도 왔다 가고, 바람도 불고…. 이 초막에서도 외로울 틈이 없네. 12월 초엔 또 네팔로 갑니다. 그 전에 가시오갈피 다 달여서 부쳐놓고."
스님의 거처는 강원 강릉 왕산면 대기리의 한 '토굴(土窟)'. 8일 오후,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안내하지 못하는 산 속 좁은 차로를 구불구불 달려 그 흙집에 닿았다. 추운 산 속 방 세 칸, 부엌 한 칸짜리 집 옆에 가시오갈피 밭(6611㎡·2000평)이 있었다. 첫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빨리 덮어야겠네. 보름 동안 말렸는데!" 집주인 영봉(靈峯) 스님이 급하게 비닐 장막으로 마당 전체에 깔려 있던 가시오갈피 더미를 덮었다. "이게 다 토종이에요. 거름, 농약 안 치고 키웠지. 보름 동안 350병(1.8ℓ) 달였는데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어요. 젖으면 안 되는데." 마당 뒤편에서 커다란 약탕기 3대가 번쩍거렸다.
영봉 스님은 2년 전 네팔 카트만두 젊은이에게 무료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세종한국문화언어교육원'을 세웠고, 올 10월엔 카트만두에서 버스 타고 하루 종일 달려, 거기서 또 나흘을 걸어야 닿는 마을에 셰르파(Sherpa) 자녀 100여명을 위한 어린이학교를 만들었다. 또 3년 전부터 미얀마를 탈출한 소수민족 어린이들에게 500만원을 부치고 있다.
교육원과 어린이학교 운영비, 기부금으로 스님이 쓰는 비용은 연간 5000만~6000만원. 신도와 지인 40~50명이 알음알음 보탠다. 스님이 매년 가을, 두달간 가시오갈피 즙을 달이는 건, 후원자들에게 보낼 답례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운영비를 생각하면 늘 조마조마해요. 빚도 지고, 신경 쓰니까 밥이 잘 안 넘어가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건 산에서 나는 약초, 버섯 캐서 도와준 분들에게 보내는 일이에요. 5년 전부턴 가시오갈피 밭을 일궜어요. 신도들이 즙이 진해서 좋다고 해요. 하하."
17세에 출가한 영봉 스님은 1985년 "고고한 승려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서" 선방을 떠나 전국을 떠돌았다. 떠돌고 떠돌다 일본에도 갔다. "3년간 '만행(萬行·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갔어요. 일본 오사카에서 낮에는 고분발굴현장에서 막일 하고, 밤에는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본에서 1년 반쯤 지내니 1000만원이 모였다. 이 돈으로 다시 중국, 홍콩, 태국, 네팔을 거쳐 인도, 부탄, 티베트를 돌아 강원도 토굴로 돌아왔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좀 가시는 듯했다.
1988년 처음 네팔의 칼라파타르(5545m)를 시작으로, 1990년 다시 네팔 메라픽(6476m) 정상에 올랐다. 이번엔 일종의 '등정 수행'이었다. 그러다 1994년에는 법명을 '해종(亥宗)'에서 '영봉'으로 바꿨다.
"메라픽을 오른 게 알려지면서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방송 영상을 찍는데, 같은 언덕에서 열번을 다시 내려와달라고 하고, 땀도 안나는 데 얼굴에 물 뿌리고 다시 찍고… 이렇게 하다 보니 수행이 안 되겠다 싶었고, 숨어 지내려고 이름을 바꿨어요." 그 후론 그저 조용히 산에 올랐다.
2005년 그가 네팔을 다시 찾기로 한 것은 '포터(porter·짐꾼)'때문이다. "3~4개월 걸리는 정상 공격에 나설 땐 셰르파뿐 아니라 요리사, 짐꾼 수백명을 동원해요. 내 깨달음 때문에 무거운 짐을 30~40㎏씩 메고 걷는 짐꾼을 보면 안타까웠어요. 가난을 대물림한 짐꾼이 당장 '어깨가 끊어지는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죠."
그래서 세운 게 무료 한국어교육원. 3층짜리 건물(200평)을 빌려 사람들을 모았다. 3개월 과정의 한국어 교육을 2차례 정도 받고 나면, 젊은이들은 더 이상 짐을 들지 않고도 한국인 등반객의 '가이드' 역할을 할 수준이 된다. 이 교육원을 나온 청년 둘은 네팔의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EPS-KLT)에 합격해 현재 거제도와 안동에서 일하고 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2주간 토굴에서 스님 일을 도왔던 여성 산악인 남난희(53) 대장이 경남 하동 자기 거처로 떠날 채비를 했다. 스님이 말했다. "오늘은 눈도 오고, 사람도 왔다 가고, 바람도 불고…. 이 초막에서도 외로울 틈이 없네. 12월 초엔 또 네팔로 갑니다. 그 전에 가시오갈피 다 달여서 부쳐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