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의 평점 따윈 필요없어] 렛미인… 뱀파이어와 인간, 그 가련한 사랑법

김영하의 소설 '흡혈귀'는 우리 주위에 암약 중인 흡혈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여자가 남편이 흡혈귀 같다고 의심하는데, 관 속에서 숙면을 취하고 동서고금 안 읽은 책이 없는 그는 피도 빨지 않고 대낮에도 잘 다닌다. 왜냐하면 흡혈의 자유와 반역의 재능을 헌납당한 대신 생존의 굴욕만을 넘겨받았기 때문이란다.

한 마디로 개량종 뱀파이어인데, 이렇듯 주변에 진짜 뱀파이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영화 '트와일라잇'이 하이틴 로맨스와 뱀파이어의 결합이었다고 해서 영화 '렛미인'을 12살 소년 소녀가 나오는 황순원 '소나기' 풍의 뱀파이어물이라 예상해선 안 된다. '렛미인'은 훨씬 창백하고 처연하다. 소년 소녀의 순정한 슬픔이 혈관주사처럼 따끔따끔 욱신욱신 온몸에 퍼지기 때문이다.

눈 덮인 미국 뉴멕시코의 한 마을에 금발의 소녀와 아버지로 보이는 50대 남자가 이사를 온다. 왕따 소년 오웬은 옆집에 살게 된 이 신비로운 소녀 애비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둘이 가까워질수록 마을에는 의문의 시체가 늘어나고 애비가 뱀파이어란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미 오웬은 애비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렛미인. 네 안에 들어가게 해 줘. 타인의 영역에 허락 없이 들어가지 않는 뱀파이어지만 한번 들어가면 모든 것을 원한다. 인간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면서도 결국 뱀파이어의 유혹에 응하고 만다. 인간의 가장 친밀하고 달콤한 행위인 키스와 닮은 그들의 살인방식에 눈을 감고 마는 것이다.

언제라도 제물이 될 수 있는 이 관계에서 인간은 가련한 사랑법을 발휘한다.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 토마스. 그는 애비의 아버지처럼 보이나 실은 오랜 세월 애비를 위해 살인을 저질러온 친구이자 연인이자 보호자다. 이제는 늙어 더 이상 살인이 힘겨운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피 한 방울까지 애비에게 바치고서 사라진다.

뱀파이어를 사랑했기에 너무 많은 죽음을 본 그. 그리고 늙은 그의 모습 위로 겹쳐지는 앳된 오웬의 얼굴. 팜므파탈 뱀파이어를 사랑한 두 남자의 사랑이 고되어도 인간을 향한 사랑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될까. 그들의 인생은 짧아도 사랑만큼은 불멸의 존재가 간직하는 불멸의 기억 속에 영원하리라는 사실 말이다.

렛미인=감독 매트 리브스. 출연 크로 모레츠, 코디 스미스 맥피. 11월 18일 개봉. 15세 관람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