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지적장애 정이호군, 알코올 중독 아버지 향한 사랑 "아빠, 이제 퇴원했으니 함께 대공원 가요"

    입력 : 2010.11.23 03:03

    폭음 뒤엔 폭행 일삼았지만 치료 위해 입원한 아빠를 매일 그림 그리며 기다려

    지난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번동의 집에서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정이호군이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는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카네이션을 들고 붓으로 아버지와 같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아빠랑 지하철 타고 대공원 가는 거야."

    지난 19일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 번3동 임대아파트에서 정이호(15)군이 아버지와 아들이 지하철에 탄 모습을 그린 그림에 색칠하고 있었다. 정군은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날 퇴원하는 아버지 가슴에 달아줄 카네이션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지적장애 3급인 정군은 늘 웃는 표정이어서 별명이 '미소 천사'다. 그런 정군인데도 어머니 김윤미(가명·37)씨에게 "아빠 이제 술 안 마시지?"라고 자꾸 물으며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김씨는 "아빠 이제 괜찮을 거야"라며 정군을 달랬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정군 아버지는 8년 전부터 폭음을 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정군을 때리고 집 밖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보다 못한 김씨가 남편을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지만 정군은 "아빠 보고 싶다. 밥 잘 먹을까?"라며 늘 아빠 생각뿐이었다. 얼마 전에는 엄마와 병문안 가서 "아버지 몸무게가 40㎏밖에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정군의 사랑이 극진한 이유는 7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대공원 나들이를 갔던 추억 때문이다. 정군은 이날도 "아빠랑 대공원에 가서 사자도 보고 호랑이도 봤다"고 어머니에게 자랑했다.

    이날 오후 아버지와 함께 집에 돌아온 정군은 "아빠가 집에 와서 너무 좋다"며 아버지를 꼭 껴안으며 방 안을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어머니 김씨는 "우리 이호가 저녁 때 아빠에게 가더니 귓속말로 '이제 담배도 피우지 말고 술도 먹지 마'라고 당부하더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제 정말 좋은 아빠가 될게"라고 다짐하며 정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정군이 언어·미술 치료 등을 위해 다니는 강북구 한 복지관을 통해 정군의 사연을 접한 사랑의전화복지재단은 지난 10월 한 달간 인터넷을 통해 모은 돈 450만원을 이날 정군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성금을 받아든 김씨는 "앞으로 남편 치료비로 소중히 쓰겠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랑의전화복지재단 마포종합사회복지관 김태현(28) 복지사는 "매달 안타까운 사연의 아이들을 소개해 모금을 하는데, 장애가 있는데도 아버지 수술비부터 걱정하는 이호군의 사연을 전하자 평소보다 많은 돈이 모였다"며 "아버지도 퇴원했으니 우리 이호가 안정적인 가정에서 더 밝게 웃는 '미소 천사'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