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학창시절 장학금, 다시 학생들에게"

오 교수는 "작년 말에는 장학금을 받던 한 고교생에게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2년 만에 조기 졸업해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는 소식과 함께 "남은 1년치 등록금은 다른 학생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오 교수는 "내 인생 자체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도움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경기도 동두천의 보육원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숨진 뒤 가족들은 오 교수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보육원에 얹혀살았다. 구호단체 월드비전이 후원하는 보육원이었다.

오 교수는 그 인연으로 월드비전 한국본부 장학금을 받아 1966년 건국대학교 농업교육과에 입학했다. "어머니와 동생 2명이 살던 단칸방은 비좁았고, 교통비가 없어 통학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대학생활 중 2년을 강의실에서 먹고 자고 했습니다." 그 사정을 안 학과장이 추천해 3학년부터 2년간은 한 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군장교(ROTC)로 임관하려 한 꿈은 포기했다. 2년간 노숙생활로 영양실조와 늑막염에 걸려 ROTC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사병으로 군대를 제대한 그는 유학을 준비했지만 이번엔 비행기 탈 돈이 없었다.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을 외국에 안전하게 인도해주는 조건으로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비행기 표를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씨는 하와이, LA를 들러 입양아들을 내려주고 시카고의 한 주립대학까지 비행기를 얻어탔다. 관광가이드, 모텔 전화 교환원, 중국집에서 일하며 등록금을 벌었다. 그 사이 월드비전 미국본부를 통해 또 1000달러의 장학금을 받았고, 무사히 박사학위를 땄다.

1987년 대학교수가 된 오 교수는 "이제부턴 '어떻게든 갚아 나가자'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1992년에 미국 월드비전에 2000달러, 한국 월드비전에 5000달러를 내놓았다. 그는 1995년부터 매달 월드비전에 30만원씩 지금까지 4000여만원을 기부해 아프리카 해외 아동을 돕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어릴 적 보육원 생각이 나서 한 교회를 통해 북한 함경도 보육원에 1000만원어치 밀가루 10t을 보냈다. 2000여명 아이들이 두 달간 빵을 먹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오 교수 지인 장성중(67) 전 충북대 교수도 지난해 퇴직금 가운데 1000만원을 되돌림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장학금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나는 형편이 어려워서', '내가 공부를 잘했으니까'라며 장학금을 받은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장학금을 받고 잘 된 기성세대들부터 힘든 시절을 한 번쯤 생각해보고 어린 학생들을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수능을 치른 대원외고 정근원(18)양도 되돌림 장학금을 받고 있다. 정양은 "이 장학금을 받으면서 큰 동기부여가 됐다"며 "나중에 비슷한 처지의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되돌려주며 오 교수님의 되돌림 장학금사업에 동참하고 싶다"고 했다.

건국대학교 오성삼(63) 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8월 한 대학생으로부터 "2학기 등록금은 받지 않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 교수가 장학금으로 1학기 등록금을 내 준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파출부 일을 하는 어머니와 상의했다며 "우리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한 학기 등록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으니 좀 더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양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어린 학생들의 속 깊은 생각에 가슴 뭉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오 교수는 작년 초부터 '되돌림 장학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8년 말 지인들 송년 모임에서 "다른 사람이 준 장학금으로 열심히 공부해 성공한 만큼 받았던 장학금을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되돌려 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와 그 자리에서 '되돌림 장학금'운동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평소 하고 싶던 일이었던 오 교수가 운동을 주도하게 됐다. 2년여 동안 동참한 사람이 70여명으로 늘었다. 모두 학창 시절 한 번이라도 장학금을 받아 본 오 교수 지인들이다. 이들이 낸 돈은 지금까지 5000만원 넘게 모였다. 이 돈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대학생 2명과 고등학생 1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