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게임] "환상 호흡" 박정환·이슬아, 혼성페어 금메달

또래들이 화려한 컬러의 컴퓨터게임에 빠져 있을 때 흑백의 세상에서 놀던 꼬마들이 있었다.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시간에 생사(生死)의 기로에서 활로(活路)를 찾아 고심하던 소년 소녀들이 있었다.

그들이 국가대표 선수가 됐고 '아시안게임 바둑 한국시대'의 첫 문을 열었다. 22일 광저우기원에서 열린 혼성 페어 종목 결승전. 박정환(17) 八단과 이슬아(19) 初단은 결승서 중국 셰허-쑹룽후이 조를 꺾고 아시안게임 첫 바둑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승부에선 반 집을 졌으나 쑹룽후이가 착수 순번을 착각, 2집을 공제 당하는 바람에 거꾸로 1집 반을 이기는 극적인 승부였다.

양재호 감독(九단)은 "기적이 없이는 역전할 수 없다고 봤는데, 진짜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날 오전 준결승에서 박·이 조에게 패했던 최철한(25) 九단·김윤영(21) 二단 조도 대만 조를 3-4위 결정전서 꺾고 동메달을 추가했다.

이슬아는 이번 대회를 통해 '최고의 바둑 스타'로 떠올랐다. 귀여운 용모 덕에 인터넷에서는 이미 이슬아 '얼짱 신드롬'이 퍼지고 있던 중이었다. 이슬아는 "그동안 스트레스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두통에 시달렸다"며 "얼짱 얘기 때문에 느끼던 부담을 좀 덜게 됐다"며 웃었다.

여수에 살던 이슬아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기원에서 처음 돌을 잡았다. 여자아이의 성장세가 보통 사람 차원을 넘는다고 판단한 기원 원장은 그를 서울의 바둑 인재 양성소로 유명한 허장회 도장으로 보냈다. 가족들도 덩달아 팔자에 없는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이슬아는 남들이 학교로 가는 시간에 도장으로 갔고, 남들 과외공부가 끝나는 저녁 10시에 도장 문을 나섰다. 하루 13시간씩 바둑판과 씨름해야 했다. 승부욕이 유달리 강했던 소녀는 입문 7년 만인 고교 1학년 때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프로 입단에 성공했고 결국 아시안게임 정상에 섰다. 허장회 사범은 "입단까지 남보다 3~4년은 빨랐다"면서 "전투적이고 고집 세고 창조적인 기풍을 가진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박정환 八단은 한국 바둑계가 누구보다 기대하는 유망주. 현재 십단과 천원 2개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국내 최연소 九단 승단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국내 프로기사 250명 중 11월 랭킹은 4위. 이슬아와 페어 조합을 이룬 박정환은 이후 국내의 여러 가상 상대와의 연습 페어대국을 통해 호흡을 맞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