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동업자 倫理

〈제12보〉(159~173)=세계 바둑은 바야흐로 백가쟁명시대를 맞고 있다. 상반기 중국 쿵제(孔杰)의 LG배, 삼성화재배, 후지쓰배 연속 석권에 이세돌이 비씨카드배 제패로 제동을 걸면서 2파전으로 좁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후반기로 접어든 뒤 두 기사는 다른 국제대회 결승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삼성화재배는 구리(古力)와 새 얼굴 허영호의 다툼으로 좁혀졌고, 이번 LG배 역시 전혀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는 중이다.

좌하귀엔 아직 흑이 '가'로 치중하는 맛이 남아 있다. 참고1도 7까지 빅활(活). 가뜩이나 '없는 살림'인 백으로선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다. 159, 161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최철한이 모처럼 안전 운행을 택한 수순. 백 164는 참고2도의 수단을 막고 있다. 버텼다기보다는 "내 목을 쳐다오" 하는 의미가 강하다.

이럴 때는 그 뜻을 따라주는 게 '동업자의 윤리'일지 모른다. 165. 최철한은 마침내 집행(執行)에 나섰다. 170은 일종의 유서(遺書) 같은 수. 전장을 벗어난 이 일착엔 한 판 바둑의 최후를 앞둔 장수의 온갖 상념과 회한(悔恨) 따위가 담겨 있다. 173으로 마침내 상황 종료. 거의 몰살(沒殺)에 가깝다. 장렬하다면 장렬하고, 참혹하다면 참혹한 피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