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뛰는 검찰·금감원, 나는 외국인 작전 세력

"사건 초기에 조사하러 왔던 검찰은 이미 조사에서 빠졌어요. 너무 복잡한 사건이라…."(금융감독원 관계자)

장 마감 직전에 2조원이 넘는 외국인 매도 물량이 서울 증시에 쏟아졌던 '매물폭탄' 사건이 벌어진 지 10일이 훨씬 넘었다. 금융위원회는 22일 이 사건과 관련, 중간보고를 겸한 기자간담회를 열었지만 '제도를 고치겠다'는 말만 했을 뿐, 속시원히 주가조작 혐의가 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오히려 금융감독원 일각에서는 '실제 주가조작이 있었다 한들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반응조차 나온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외국계 금융기관의 주가조작을 속 시원하게 입증한 일이 없다. 올 들어서도 세 건의 외국인 시세조종 혐의 사건이 올라와 있지만 조사는 지지부진할 뿐이다. 감독기관 머리 위에 외국인이 앉아 있는 형국이다. 외국인들은 주가조작 수사의 성역이나 된다는 것일까?

◆3건의 주가 조작 의혹

22일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이번 '매물폭탄' 사건 이외에도 올 들어 2곳의 외국계 투자은행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주가조작 의혹을 통보받은 상태다.

프랑스계 투자은행인 BNP파리바가 운용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은 지난 2006년 신영증권이 매입해 한국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는데 기준일에 기아자동차 주식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조기상환해 주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BNP파리바는 기준일 장 막판 10분 전에 기초자산인 기아자동차 주식을 대량매도, 불과 12.5원 차이로 조기상환이 무산됐다. 금융감독원은 BNP파리바가 일부러 기아차 주식을 팔아 주가를 떨어뜨렸다고 보고 검찰에 통보,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캐나다 왕립은행(Royal Bank of Canada)에 대해서도 비슷한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소환 어려워 가장 큰 문제

외국계 투자은행들의 시세조종 의혹이 제기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의 조사를 통해 실제 검찰에 기소되거나 관련 외국인이 구속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외국인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이들이 조사에 협조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 법원에서 무혐의 처리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펀드 사건이다. 검찰은 지난 2006년 삼성물산 주가조작 혐의로 증권선물위원회에 의해 고발된 영국계 헤르메스펀드와 전 펀드매니저를 벌금 73억원에 약식기소하고 이스라엘에 체류 중인 펀드매니저 로버트 클레멘츠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기소중지 처분했다. 하지만 2년 후 법원은 이들이 투자자들을 속였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고 헤르메스펀드는 작년부터 한국시장에 재상륙해 활동 중이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관계자는 "정확한 조사를 하려면 외국으로 나가서 조사해야 하는데 외국에 나가서 조사한다고 해도 이들이 조사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시세조종 기법이 첨단화되면서 조사기관이 이들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매물폭탄이 나온 지난 11일, 검찰은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와 공동으로 조사에 착수했으나 사건 자체가 워낙 복잡하다는 점을 문제삼아 조사에서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소송 전문 나승철 변호사는 "외국계 증권사를 상대로 민사로 소송하더라도 소장을 송달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이 소요돼 소송 진행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 증권사 지점 혐의 입증 난관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장 종료 10분을 앞두고 도이치증권에서 이날 증시 총 거래대금의 25%에 달하는 2조3000억원의 매물폭탄이 쏟아진 점을 확인하고 불공정거래 여부를 조사 중이다.

매도주문을 낸 것은 외국 증권사 한 지점인 것이 유력시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외국 금융회사가 미리 주가가 떨어지면 이득을 보는 상품을 사 놓고 일부러 주가를 떨어뜨렸는지(주가조작) 여부다. 금융감독원은 이번에 정밀조사를 실시해 주가조작 여부를 밝혀낼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려면 이들 외국 투자은행의 내부 장부를 봐야 하는데 이를 외국 은행이 보여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실제 돈을 푼 것이 어느 나라의 헤지펀드인지 조차도 알기 힘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비관한다.

이정의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장은 "11월 11일 옵션만기 사태 시 주가 급락 사태 자체로 사회적 물의가 커서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지만 조사완료 시점까지 시간은 꽤 오래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연계증권(ELS)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 일정기간 동안 주가 상승 조건을 만족하면 조기상환 기회가 주어져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만약 주가가 일정 부분까지 하락하면 손실을 입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