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앵커맨' 시대를 곱씹다

"봉 회장, 나 이거 가야 할 텐데, 갈 때가 됐는데. 왜 이렇게 남아 있을까."

2008년 노환으로 입원 중이던 김수환 추기경은 문병을 온 봉두완(76) 천주교 한민족돕기회장의 손을 붙들고 말했다. 한때 호흡곤란으로 위중한 상태에까지 이르렀지만, 매일 30분간 만인을 위한 기도를 했던 김 추기경이 인간적 고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봉 회장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말, 한국 천주교 북한선교후원회장이던 봉씨가 당시 백담사에 머물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가톨릭 신자였던 전 전 대통령은 백일기도를 마친 후 봉 회장에게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속 배신감과 분노를 잠재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1970년대 TBC 저녁종합뉴스를 진행했던 '대한민국 1호 앵커맨' 봉두완 회장이 자신이 만났던 정치·경제·종교 분야 인물을 회고하며 '너 어디 있느냐'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는 1959년 동화통신사 기자로 시작, 한국일보 주미특파원,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동양방송 앵커로 활동했다. 제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후 한국 천주교 북한선교후원회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천주교 한민족돕기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특히 1990년대 이후 천주교에 몸담으며, 한센병 환자를 돕는 김화태 신부 등 종교인들과 교류했다. 책 속에는 그가 본 이들의 삶도 녹아 있다.

봉두완씨는 "내가 살았던 시대의 정신을 끼워 넣었다고 자부한다"며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내가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후세에 남기고 싶어 펜을 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