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지만 아름답다 그 기묘한 혼돈

제22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김홍주는 '미술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작가이다. 그는 구태여 예술작품을 만들려 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이 예술의 테두리 밖에 있더라도 자신의 작업이 타당하다고 믿는다. 한마디로 예술에 대한 우리들의 통상적인 관념을 뛰어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홍주는 오늘날까지 미술이 추구했던 창조적인 미(美) 자체를 멀리한다. 그는 이율배반적인 미묘한 표현, 다양하고 적절한 재료와 매개체 선택, 기이하지만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영상,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표현의 흔적 등으로 혁신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미술을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 개념을 떠나 미술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너무도 창의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예술가다.

이번 이중섭미술상 수상자 선정은 유난히 경쟁이 치열했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자가 국제화된 문화 기류에 호흡을 맞추면서 한국미술계에 활력을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진취적으로 자신의 작업에 임하고, 대내외적으로 넓은 활동을 보이며, 창의성과 실험정신이 뛰어난 작가를 탐색하여 선정하고자 했다. 김홍주는 그런 조건을 고루 갖춘 작가라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김홍주 작품의 어떤 점이 혁신적인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화가는 보통 표현대상을 주관적으로 파악한 상태를 형상으로 시각화하여 자신의 뜻을 표출한다. 그런데 김홍주는 이를 따르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예컨대 물주전자를 화면에 꽉 차게 그린 그림을 보면, 물주전자가 작품 주제인지 아니면 물주전자에 비친 일그러진 사람의 영상이 주제인지 알 수가 없다. 또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영상을 그린 작품을 보면, 거울 안의 영상이 일그러진 상, 험상 궂은 상, 수심에 가득한 상 등 보통 거울에 비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상(像)들이고, 상을 비추어야 할 거울도 맑지 않고 뿌예서 거울 구실을 못하는 상태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일상적인 인식 개념의 개입을 거부하는 작품들의 대상은 오로지 작가에게 작업할 수 있는 계기만 제공한다. 이 계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만의 원초적인 느낌을 추구할 수 있는 감각적인 흔적만 남겨주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도 없고, 작가는 그것을 알아봐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 제목을 모두 '무제'로 붙였다. 유동적인 흔적으로 조감도의 하늘과 땅, 바다임을 추측케하는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 색깔이 다른 많은 꽃송이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화판에 가득 나열되어 있는 작품이 있는데, 그 그림 역시 화려한 색채로 회화성을 추구한 것도 아니고 오브제를 등장시켜 미술의 현대성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보는 사람에게 너무도 낯선 김홍주의 작품에서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 그림에 공들여 아름답게 꾸민 것 같은 액자를 둘렀다는 점이다. 자신의 미술에 대한 작가의 의도적인 역행(逆行)이라 여겨진다. 미술의 기존개념을 뒤엎는 자신의 이단적인 예술관을 이처럼 철저히 구현하고 있음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김홍주의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들은 부드럽고 곱고 아름다운 색채를 보이고 있고, 정성스럽게 표현된 흔적과 기묘하게 혼돈감을 주는 내용이 눈에 즐거움을 준다. 어느 현인(賢人)이 말하건대, "그림은 대상의 아름다움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그림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김홍주의 미술에 아주 적합한 말이라 생각된다.

▶제22회 이중섭미술상 시상식 겸 수상기념 전시 개막식은 12월 2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