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눈망울… 그 안엔 뭐가 들었지?

대구시 중구 대봉동 리안갤러리에 들어서면 '애니메이션 전시장에 온 건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커다란 눈망울에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여자아이 조각이나 회화 작품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 현대미술 작가 Mr.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이다.

1969년 일본에서 태어난 Mr.는 본명을 뒤로 하고,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로 'Mr. 베이스볼(야구)'이라고 불렸던 나가시마 시게오에게서 'Mr.'를 따왔다. 작가는 "내가 나가시마 시게오와 닮아 데뷔 당시부터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다"며 "그때부터 Mr.란 이름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가로 6m가 넘는 회화 작품인 〈무제〉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여자 어린이들이 화면 가득하다. 교복이나 수영복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들이 만화에 등장하는 토끼와 별로 둘러싸여 있다. 그의 작품은 이렇게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등장해 만화인지 예술작품인지 헷갈리게 한다. 하위문화로 취급받는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현대미술이라는 예술 영역으로 흡수시킨 것이다.

작가가 만화에 등장할 것 같은 여자 어린이를 형상화한 데에는 일본의 현실이 깔려 있다. 작가는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과 맺은 안보조약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킬 권리를 뺏겼다. 마치 척추가 없는 상태와 같다"고 말했다. 일본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오타쿠 문화가 강한 것도 이런 상실감 때문이다. Mr.의 회화 작품 〈미카〉를 보면 순진한 얼굴의 여자아이에게서 묘한 긴장감과 상실감이 느껴진다.

이런 맥락에서 Mr.의 작품을 보면 팝아트에 만화와 애니메이션·게임적 요소를 결합한 일본의 네오팝(Neo-Pop)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정열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한 Mr.는 무라카미와 함께 세계 미술 속에서 네오팝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Mr.의 대형 조각 작품〈Strawberry Voice〉는 여자 어린이의 두상(頭像)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의 방이 꾸며져 있다. 이번 전시는 Mr.의 국내 첫 개인전으로, 회화와 조각 외에 드로잉과 영상 작품이 골고루 전시된다. 대구 리안갤러리에 대형작품을 중심으로 주요 작품이 전시 중이며, 서울 전시장에도 작품 6점이 나왔다. 전시는 12월 25일까지. 대구 (053)424-2203, 서울 (02)512-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