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場 누빌 때처럼… 백발 돼 부른 그 해군가

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청소년 수련관 무대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턱시도 차림의 70~80대 노인 15명이 올랐다. 다소 긴장한 듯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경쾌한 리듬의 스위스 민요 '오 브리넬리' 선율에 따라 노래가 시작되자 금세 눈빛이 20대 청년처럼 반짝였다. '고향의 노래', '향수' 등으로 이어진 노인들의 합창이 끝나자 숨죽였던 객석에선 기립박수가 터졌고,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에 해군 군가인 '바다로 가자'로 화답했다. 객석과 무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해군 군가를 부른 반백의 노인들은 해군 군악대 3기생으로 구성된 '사랑애 중창단'. 지난 1950년 12월 5일 해군에 입대한 이들은 이날 당시 해군의 애창곡이었던 '바다로 가자'를 부르며 입대 60주년을 자축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던 당시, 이들은 해군 군악대를 모집한다는 말에 자원해 입대했다. 고등학교 밴드부 학생부터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53명의 지원자는 서울 명동에서 각자의 악기를 들고 해군 트럭에 올라타 얼어붙은 한강을 차로 건넜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창은(81)씨는 "우리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내 재능을 발휘하고 싶어 클라리넷을 들고 트럭에 올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6·25 전쟁 내내 전선을 누비며 해군 장병들에게 '바다로 가자', '해군가' 등 군가를 들려줬다.

악기를 들고 6·25 전쟁 당시 전장을 누볐던 이들은 2004년 정기모임 때 일부 회원들의 제안으로 중창단을 만들기로 했다. 동기회 회장인 김창성(82)씨는 "70이 넘는 나이에 악기를 연주하기 힘들어 노래하는 모임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랑애 중창단'은 이듬해인 2005년부터 매주 한 번꼴로 만나 기량을 닦고 공연을 이어왔다. 로타리클럽과 사랑의 전화 등에서 자선공연을 열었고, 환자들을 위한 위로공연을 열기도 했다. 김 회장은 "매년 4~5회 이상 이웃을 위해 공연을 한다"며 "같은 노인세대들에게서 어떻게 이렇게 씩씩하게 공연을 할 수 있느냐는 소리를 들으면 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해군군악대 후배들로 구성된 '윈드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1시간30분간 지속됐다. 지난달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된 해병 장병과 민간인에 대해 묵념하고 추모곡을 연주하는 시간도 가졌다.

김창성 회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계속 노래를 부르려 한다"고 말했다.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이문용(78)씨는 "흥겹게 노래를 부르다 보니 병도 안 생긴다"며 "노래를 부르다 무대에서 쓰러져도 행복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