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도시에 꿈을 입히는 여자' 테마파크 디자이너 니나 안

"4대강 개발? 안 하는 게 죄다."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 돈이다."

겁 없이 이런 말을 하는 여자가 있다. 테마파크 디자이너로, 세계적인 건축설계회사 커닝햄 그룹의 부사장인 니나 안(55).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비롯해 서울의 롯데월드, 에버랜드의 리모델링 작업이 그녀의 손끝에서 이뤄졌다. 원래는 비행기 승무원이었다. 숙명여대 1학년이던 열아홉 살 때 학교 그만두고 대한항공에 들어갔다. 3년간 하늘을 날다 미국으로 갔다. 샌프란시스코 대학과 예술학교에서 철학, 디자인, 건축을 공부한 뒤 워커 그룹, 네델 파트너십 등 유수의 미국 건축 설계회사에서 일했다. 1990년 자기 회사 '디자인 얼라이언스'를 차리면서는 대전엑스포 롯데그룹관 제작(1993)으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한국에는 커닝햄 서울지사를 두고 수시로 드나든다. 롯데월드가 경남 김해에 조성 중인 워터파크, 서울 롯데월드 리모델링 때문이다.

4대강 개발? 안 하는 게 죄다

―4대강 발언은 왜 하게 됐나.

"'낙동강 녹색수변벨트 조성을 위한 국제포럼'에 패널로 참석하러 왔다가 하게 됐다. 내가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성공적으로 이뤄진 14대강 개발 프로젝트를 소개하니 화제가 되더라."

―14대강 개발 프로젝트가 뭔가.

"1997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의 위대한 유산, 강(Great American Heritage River)'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10대강 개발을 선언했다. 미국에 흐르는 수백 개의 강 중 10개를 선정, 문화유산을 토대로 한 관광단지를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뜻으로…. 50개 주의 경쟁과 로비가 어마어마하게 치열해서 14대강으로 늘어났다."

―환경론자들의 반발은 없었나.

"미국 14대강 개발은 환경부가 주도했다. 강은 내버려두면 퇴적물이 쌓인다. 이걸 치우지 않으면 퇴적물이 썩거나 불이 나고 그 주변이 폐허가 된다. 깨끗이 청소하는 게 1단계이고 그다음에 아름다움과 기능을 입힌다. 콘크리트로 자연을 발라버리는 토목공사식 개발이 결코 아니다."

―환경주의자들이 친환경적 개발을 반대하는 건 아니잖나.

"개발이 곧 파괴라는 극단적 환경론자들 얘기다. 자연 그대로 두는 게 환경보호가 아니다. '절대 손대지 마' 하는 사람들은 원시림 가서 살아야 한다. 개발론자들처럼 산업·농업용수로서만 강을 보는 게 아니라 노스탤지어, 향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답이 나온다. 강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시작해야 한다."

―놀이공원 만드는 사람이니 강 개발을 주장하는 거 아닌가.

"환경을 잘 개발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지자체들 관광개발 프로젝트에 자문하러 전국을 다녔는데, 지역마다 굶어 죽을 판이라고 아우성이더라. 이 아름다운 자원을 왜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독립기념관이 애물단지 된 이유

―테마파크 디자이너는 뭘 하는 직업인가?

"롯데월드에 '혜성특급'이란 게 있다. 혜성같이 빠른 우주선이 대기하고 있는 정거장, 이 우주선이 해왕성을 벗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초, 우주괴물 출현, 우주 괴물의 입 속으로 빨려가는 우주선 식의 시나리오를 우리가 만든다. 스티븐 호킹의 책을 읽어야 하고 우주에 관한 최신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디자인 중에서도 가장 상업적인 것 같다.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다. 어떤 시설이든 돈을 벌지 못하면 만들 이유가 없다."

―지나친 돈의 논리 아닌가.

"한국인들의 그런 안일한 생각이 '독립기념관'을 낳은 것이다. 독립정신 기리는 숭고한 건물로만 세웠지, 사람들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끌어모을 것인지 디자인하지 않아서 애물단지가 됐다. 지자체마다 수두룩하더라. 펀(fun)과 엔조이(enjoy)를 팔아야 한다."

―지자체에 가서는 어떤 자문을 하나.

"관광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고 한다. 하루 단풍놀이가 아니라 진정한 휴식, 재충전이 이뤄지는 휴가(vacation) 개념으로 바꾸라고…. 현대인들 너무 피곤하지 않나. 그런데 한국엔 휴식을 취할 장소가 없더라. 시골 팬션에 가서 한 방에 때려 자고 삼겹살 구워 먹고 자동차 타고 한 바퀴 휙 돌아보면 끝이다. 경제대국 10위에 드는 나라에 호텔, 식당, 놀이시설, 자연 등 여행자의 모든 니즈(needs)를 하나의 동선에서 충족시킬 수 있는 국제 수준의 리조트가 없다. 전국이 푸드코트일 뿐이다.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올 이유가 없다."

성공? 이력서만 500번 썼다

―워커에서 커닝햄까지 승승장구한 비결은 뭔가.

"승승장구 안 했다. 워커만 해도, A부터 Z까지 LA타임스 구인란에 실린 모든 설계회사들에 이력서를 넣은 끝에 운 좋게 들어갔다. 이력서를 500번은 쓴 것 같다.(웃음)"

―아무나 고용하는 회사가 아니잖나.

"시행착오가 많았다. 미국 애들과 똑같아지려고 노력했는데, 똑같아져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 팔아야 하는 것이 생존법칙이었다."

―니나 안만의 가치를 어떻게 만들었나?

"효율성! 주어진 시간에 일을 다하지 못하면 집에 와서 일했다. 집에서 일한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적지 않았으니 당연히 효율성이 높지. 미국 애들은 그런 머리가 안 돌아가더라.(웃음) 창의적인 미국동료들과 경쟁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효율성만으로 경쟁이 되었겠나?

"외부에서 내가 직접 프로젝트 따오는 거를 생각했다. 네델에서 근무할 때다."

―마케팅 부서가 따로 있는데 가능한 일인가?

"미스 아메리카 출신의 금발 미녀들이 회사 홍보물을 뿌리고 다녔지만 그 애들이 가는 곳은 백인 사회다. 나는 미국 내 아시아인들이 사는 곳으로 갔다. 한국 기업, 은행, 항공사들에서 신사옥을 설계해 달라고 연락이 오고 일본 회사에서도 요청이 왔다. 프로젝트가 쏟아지자 네델 회장이 내게 소원이 뭐냐고 묻더라. 고용을 보장하라, 내가 따온 프로젝트에 반드시 참여하게 해 달라고 했다."

―큰 회사에 있지, 뭐 하러 독립했나.

"마케팅에 자신이 생겼다. 어차피 팀을 이뤄서 하는 분업이고. 아시아 쪽은 자신 있었다. 덩어리 큰 미국 회사들보다 나와 일하는 게 설계비도 싸고 서비스도 좋으니 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롯데월드와의 인연이 깊다.

"대전엑스포에 롯데그룹관을 만드는데 롯데가 계약한 미국 설계회사가 선수금만 받고 문을 닫았다. 그러자 프로젝트의 일개 팀원이었던 나를 족치더라. 단지 한국인이란 이유로. 인테리어 디자이너에 불과했던 내가 쇼 프로듀서이자 제작자가 되어 13개 하도급업체를 지휘해야만 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내가 얻은 이익은 엄청난 것이었다."

―왜 다시 커닝햄으로 들어갔나.

"고3 때도 흘려보지 않은 코피를 내 회사 운영하면서 흘렸다.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돈도 좋지만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더라."

―부사장이라니 대단하다. 연봉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 회사는 각 팀의 헤드들이 돌아가면서 사장을 맡는 과두정치 구조다. 나는 퍼스널 브랜드가 있으니 상품성이 높다. 연봉? 그냥 많다.(웃음)"

―결국 성공담이다.

"성공이란 말, 공허하지 않나. 영원한 성공도 없고. 돈은 많이 벌어도 다른 면에서 실패일 수 있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도전했고 투쟁했는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