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황태자 李垠(이은)… 그 삶을 재현한 '다큐소설'

소설가 송우혜(63)씨가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1897~1970)의 생애를 다룬 장편 '마지막 황태자'(전 4권·푸른역사)를 냈다.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1권),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2권), '왕세자 혼혈결혼의 비밀'(3권)을 먼저 냈다. 일본에서 고난에 찬 시절을 보내다 박정희 대통령의 주선으로 귀국한 후 세상을 뜰 때까지 짧았던 조국에서의 삶을 다룬 4권은 집필 중이다.

작가는 문학적 상상력보다 사실의 재현(再現)에 방점을 둔다는 입장에서 '마지막…'을 '다큐소설'이라고 정의했다. "전문적인 역사 지식과 삶을 해석하는 문학적 상상력을 접목하려 했다"는 송씨는 이를 위해 2003년 이화여대 대학원에 들어가 '이은의 정략결혼 연구-언론보도(1907~1920)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2006)를 받았고, 지난해 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송씨는 "10여년 전 '순종실록부록'에서 일본에 끌려간 황태자 이은이 남의 나라 말로 공부에 매달려 3년 만에 일본 학생들을 누르고 우등상을 받았다는 기록을 발견한 것이 창작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은 우등생인 이은을 퇴교시켜 군사학교로 강제 편입학시켰습니다. 조선왕실의 자손을 열등생으로 조작하면서까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던 일제와 그에 저항한 소년 왕자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송씨는 "이은과 관련해 세간에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는 것도 이번 작업의 목표"라고 말했다. 당시 신문기사들과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등을 분석해 이은의 약혼녀였다가 강제 파혼당한 민갑완(1897~1968)이 재간택까지 통과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초간택만 통과했던 사실을 밝혔다. 이은이 일본에 인질로 가게 되자 일본 여자와의 결혼을 바라지 않았던 생모 엄비(嚴妃)가 순종의 외척인 여흥민씨 집안과 정치적 끈을 강화하기 위해 재간택에 탈락했던 민갑완에게 약혼반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고종 독살설에 대해서는 "당시 일제는 고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해도 막아야 할 상황이었다"며 부인했다. 송씨는 고종의 사망 원인에 대해 "국제사회에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려 했던 고종은 일제가 이은과 이방자(1901~1989)의 결혼을 추진하자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권력자로 부상한 엄비가 사실상 연금 상태에 있던 고종을 궁궐 밖으로 탈출시킨 과정을 밝히는 부분에서는 소설적 상상력도 발휘했다. "정식 왕비가 아닌 엄비는 가마를 타고 궁궐 출입을 할 수 없는데 갑자기 가마를 타고 다니는 월권행위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엄비를 비난했지만 실은 가마에 임금을 숨겨 아관파천을 단행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던 것이죠." 작가는 "엄비가 궁궐 밖으로 나갈 때마다 문지기들에게 뇌물을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소설적 상상"이라고 설명했다.

송우혜씨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당시 상황을 반면교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병합과정에서 일제의 치밀한 행태도 최대한 사실적으로 복원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