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따라 사라지는 것들… 언어의 사진으로 찍어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온 방민호(45)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첫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실천문학사)를 냈다. 시집을 낸 소감을 묻자 그는 "10년간 써온 시를 묶은 뒤 신촌에서 칼국수를 먹는데 눈물이 쏟아져 난처했다"며 큰 눈을 껌뻑였다. 생(生)의 어떤 갈증이 논리적인 평설(評說)로 주목받아 온 문학평론가 방민호에게 시를 쓰게 했을까. "내게 시는 고립의 나날, 가슴이 병들어 있던 시간, 구름처럼 먼 곳을 떠돌던 시간 속에서 솟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평의 언어로는 내 안의 삶의 문제를 담을 수 없었거든요."

'시인 방민호'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소멸하는 것들을 소환해 시어(詩語)의 몸을 입힌다. 그는 "지켜주지 못한 것, 살면서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내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것들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언어의 사진에 찍어 곁에 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사는 화자(話者)가 잃은 것들에 대해 사랑을 고백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옷 없는 짐승들처럼 골목 깊은 곳에 단둘이 살 때/ 우리는 가난했지만 슬픔을 몰랐다//(…)/ 내가 흐느적거리는 도시 불빛에 익숙해지자/ 당신은 폐에 독한 병이 들어 내 가슴 속에 누웠다/'(수록시 '행복'). 그것들에 대한 사랑은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수록시 '빙의') 싶을 만큼 간절하다.

구체적인 장소를 적시하며 그 안에 도시적 서정을 담은 작품들도 있다. '종로 건너편에 환하게 불 밝힌 누드빌딩에 층층마다 꼬리물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 바다개미 떼 같다 제집이 어딘지 모르는'이라고 노래한 시 '탑 클라우드'는 종로타워 33층에 있는 레스토랑 이름이고, 'MAUM'은 서울 서교동 피카소 거리의 카페다. 시인은 "먼 훗날 결국엔 잊히거나 사라질 장소들에 미리 하는 사랑 고백"이라고 말했다.

방민호 시인은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을 반복해 '괭이'에 빗댄다. 괭이는 가난했던 대학 강사 시절 지방도시 단칸방에 두고 온 자신의 과거이기도 하고, 사회의 관심 밖으로 던져진 하층민이기도 하다. 그늘에 숨어 사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아우르지만 그것을 촉구하는 근거는 마르크스적 계급의식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는 "노동자가 노동자 의식을 가지라는 것이 마르크시즘인데, 자본가도 자본가 의식을 가지면 결국 당파성(黨派性)의 충돌만이 남는다"며 "마르크스는 인생이 결국 사랑이란 것을 몰랐던 사람 같다"고 말했다. '괭이 한 마리가/ 비오는 네거리에 던져져 있습니다/(…)/어떻게 하면 이 괭이를 살려낼 수 있을까요?/ 먼저 당신은 우산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네거리 안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당신이 아무리 소리쳐도 괭이는 알아듣지 못하니까요/(…)/ 당신은 어떻게 하시려는지요?'('괭이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