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화상 29번째 수술… 세상 빛 봤어요"

    입력 : 2010.12.07 03:01

    7년 前 중국 옌지 가스폭발 사고당한 조선족 최려나양
    韓·中 보내온 성금으로 2억원 넘는 수술비 대 “건강해져서 보답할게요”

    최근 한강성심병원에서 무려 29번째 전신마취 수술을 받은 화상 환자 최려나양이 병실에서 할머니의 도움으로 주사기를 통해 물을 마시고 있다. /박국희 기자 freshman@chosun.com
    "물…." 지난 2일 서울 한강성심병원 입원실에서 최려나(18)양이 희미한 목소리로 할머니 엄현순(65)씨를 불렀다. 엄씨가 작은 주사기에 물을 넣어 친친 동여맨 붕대 사이 최양의 입으로 조심스레 흘려 넣었다. 지난달 26일 12시간에 걸친 수술을 끝내고 링거만 맞아오다 일주일 만에 처음 먹는 물이다. "아, 시원해…."

    2003년 7월 새벽 중국 옌지(延吉)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고는 아나운서가 꿈이던 11살 조선족 소녀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최양은 온몸의 9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당시 주먹을 쥐었던 손바닥, 땅을 딛고 있던 발바닥, 머리카락 가득하던 두피를 제외한 온몸이 탔다.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그나마 어머니가 불붙은 최양을 안은 채 불길을 뚫고 뛰쳐나온 덕에 목숨을 구했다. 이혼하고 딸과 살던 어머니는 사흘 뒤 세상을 떴다. 할머니는 딸의 마지막 말이 "려나 때문에 밖으로 나올 힘이 생겼다"였다고 전했다.

    이후, 그나마 타지 않고 성한 편으로 남은 머리 부분 피부를 떼어다 뼈만 남다시피한 온몸에 덮어가는 수술이 끝없이 이어졌다. 몸은 조금씩 자랐지만 이식한 피부는 그대로여서 온몸이 수축됐다. "두꺼운 옷 몇 겹을 껴입은 것처럼 늘 감각이 없었어요." 피부가 팽팽히 땅겨져 몸이 공처럼 둥글게 되면 또다시 이식한 피부를 잘라내고 그 사이를 새 피부로 메웠다. 인조피부는 물론 돼지껍질까지 사용했다. 두피를 덮은 다리에서는 머리털이 자랐다.

    최양은 163㎝까지 자라는 동안 중국에서 10번, 한국에서 18번, 총 28번의 전신마취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비행기 안에서도 얼굴을 가릴 모자·마스크·손수건은 필수였다. 할머니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최양은 사고 후 3년이 지나서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알았다. '엄마 어디 있느냐'고 손녀가 물을 때마다 할머니는 충격이 걱정돼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둘러대 왔다.

    그동안 들어간 2억원이 넘는 수술비는 대부분 중국과 한국에서 모아준 성금이다. 이번 29번째 수술 역시 한국의 복지재단 2곳에서 기탁한 2100만원의 성금으로 가능했다. 최양은 재작년에도 이곳에서 수술받았었다. 병원측은 "평생 수술해야 할 상황"이라며 "이번에는 호흡 불편을 호소해온 좁은 콧구멍을 넓히고, 이식한 지 오래된 처진 얼굴 부위의 살들을 잘라냈다"고 했다.

    전신 55%의 화상을 극복해내고 사회활동에 나서고 있는 이지선(32)씨는 최양에게 희망이다. 최양은 "5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본 언니가 늘 힘을 주고 응원해준다"며 "나중에 내가 책을 쓰면 언니 경쟁자가 될 거라면서 나를 '최 작가'라고 놀린다"고 했다.

    "다치지 않았더라면 상대방의 아픈 마음도, 저를 돕는 세상 곳곳의 아름다운 불빛도 몰랐을 거예요. 제가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