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쭉한 뽕짝? 아방가르드 트로트예요

한국 인디음악계에 또 하나의 운석이 떨어졌다. '아방가르드 트로트'를 표방하는 이 뮤지션의 이름은 '옥수동 왕순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려서 별명이 순대인 데다 키가 커서 '왕순대'란다. 소속사와 "왕순대씨는…" "왕순대씨가…" 하는 통화 끝에 지난 1일 왕순대를 만났다. 그 기획사 이름이 '붕가붕가 레코드'이니, 왕순대와 용호상박(龍虎相搏)인지 오십소백(五十笑百)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제가 옥수동 왕순대입니다" 하고 나타난 사람은 키 187㎝ 거구에 허여멀겋게 생긴 청년 조승현(30)이었다. 최근 내놓은 데뷔음반에서 "똑 떨어지겄네/ 똑 떨어지겄네/ 쌀도 돈도 싸그리 똑 떨어지겄네"(똑 떨어지겄네), "작년에 왔던 스팸전화/ 뒈지지도 않고 또 왔네"(스팸전화) 하고 걸쭉하게 노래한 사람이다.

그는 음악 프로듀서로 일하는 친구의 권유에 못 이겨 취미로 만들어 부르던 트로트로 음반을 내게 됐다고 했다. 여주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그는 통기타를 뚱땅거려 멜로디를 만들고 살을 붙여 만든 노래가 25곡쯤 된다고 했다.

그의 본업을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는 천주교 비영리단체인 '평화의 모후 음악선교단'의 단장이자 리드 보컬이다. "트로트를 왜 하는지 저도 저한테 물어보고 싶네요." 그는 웃으며 "트로트 음반을 사서 들을 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라디오에서 트로트가 나오면 볼륨을 높인다"고 했다.

"천주교 음악 선교단에서 기도에 쓰이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다 보니까 갈증이 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통기타로 흥얼거리던 노래들이 다 '창작 트로트'인데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도 있지만 남들이 좋아해주는 음악을 하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왕순대는 노래와 코러스 더빙, 기타, 드럼까지 모두 혼자 작업해 8곡이 담긴 앨범을 완성했다. 첫 곡 '벌집 됐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듣는 '뽕짝'을 능가하는 요란무쌍한 음악이지만, 트랙이 넘어갈수록 연주가 정통 트로트에서 벗어난다. '스팸전화'는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냥'은 변주된 로큰롤이다. 그럼에도 가사는 "먹고 싶다 동태전/ 먹고 싶다 부추전"(모듬전)처럼 투박하고 원초적이다.

"출근길에 사람들 표정을 보면 다들 원자(原子)화돼 있잖아요. 하루 종일 기계와 상대하느라고 고개는 숙여져 있고…. 그런 사람들이 듣고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왕순대는 "혹시 인기가 생기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서 음악하는 즐거움이 줄어들면 왕순대 음악을 할 이유가 없다"며 "즐거움만 유지된다면 언제나 에너지를 불태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