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나눕시다] 극빈 祖孫(조손)가정 민혁이 "새집으로 이사 가요"

지난달 19일 오후 전남 영암군 한 시골 마을회관 앞 통학버스에서 내린 민혁(8)이가 집을 향해 단숨에 뛰어갔다. 키 130㎝에 몸무게 22㎏으로 또래보다 작은 등에서 몸집보다 큰 책가방이 출렁거렸다. 민혁이 옷은 소매가 팔보다 한 뼘은 길어 뛸 때마다 펄럭펄럭 소리가 났다. 할머니 박순단(54)씨가 민혁이를 마중나왔지만 민혁이는 골목 모퉁이에서 벽면 공사가 한창인 집만 쳐다봤다. 이번 주말 민혁이네가 이사 갈 새 보금자리다.

민혁이는 어머니 얼굴을 모른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민혁이를 두고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아버지마저 객지로 나가 연락이 끊겼다. 그때부터 민혁이는 남의 선산 움막에서 '산지기 노릇'을 하며 사는 조부모와 살게 됐다. 박씨는 "저 애는 '배는 곯리지 말아야지'라며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이 사준 분유로 큰 아이"라고 했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박씨 부부는 보란 듯 손자를 키우고 싶었다. "날로 커가는 손자마저 산에서 살게 할 수 없다"며 4년 전 빚 350만원을 내서 마을에 집을 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아들이 "민혁이 잘 지내냐"며 소식을 전해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집이 생겼을 무렵 박씨 남편이자 민혁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한 뒤로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박씨는 "형편이 어려워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평생 처음 마련한 집에서 앓다가 떠났다"고 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빚을 내 마련한 집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단칸방 외벽이 아래쪽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갔고, 부엌 천장은 여름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구멍이 뚫렸다. 박씨는 "사람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속은 것'이라 했다"며 "집이 무너질까 봐 무서워 파출부 나가는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서 며칠씩 지내다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작년 겨울에는 박씨마저 오른쪽 팔을 다쳤다. 마을 김장 일을 거들며 대야에 담긴 배추를 들다가 약한 뼈가 부러진 것이다. 이후 전혀 일을 못해 기초생활수급비 50여만원이 한 달 생계비가 된 박씨에게 이사는 '꿈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지난 4월 민혁이네 사연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다. 조손 가정 같은 대리양육 가정을 지원하는 어린이재단 전남가정위탁지원센터가 민혁이네 사정을 인터넷에 올려 모금을 한 것이다. 센터 사회복지사 윤경현(30)씨는 "민혁이가 '선생님! 집이 무너지고 있어서 잠도 못 자요'라고 말하기에 직접 가보니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임시방편으로 민혁이 가족을 군에서 운영하는 공동주택으로 옮겼지만 공동주택도 3개월 뒤에는 비워줘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사연이 알려지자 인터넷 소액 기부, 지역 병원, 개인 후원자, 복지기관 후원금 등 순식간에 3000여만원이 모였다. 집 설계와 시공을 맡겠다는 이들이 나왔고, 지역의 난방기기업체들도 보일러를 무료로 제공했다. 한국흙건축연구회 김순웅 박사(목포대 친환경건축연구센터)는 "민혁이네 사연을 듣고 설계와 흙미장 등을 맡기로 했다"며 "목포대 건축전공 대학생 10여명도 흙미장을 거들어줬다"고 말했다.

민혁이가 살 새집은 방 2개에 주방과 화장실을 갖췄고 태양열로 물을 데워 난방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민혁이는 "전에 살던 집은 화장실도 없고 벌레도 나왔는데 새집은 내 방에 친구들도 데려올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박씨도 "동네에서 우리 집이 '청와대 같다'고 하더라"며 "민혁이가 이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잘 키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