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연평도 주민들에게 바친 '난 바람 넌 눈물'

"난 바람이라면 넌 눈물인가 봐…."

지난 7일 오후 2시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라이브카페에서 1990년대 초 인기가수였던 백미현(44)씨가 대표곡 '난 바람 넌 눈물'을 부르자, 무대 아래에 앉아 있던 40~50대 중년 여성과 남성 300여 명이 조용히 따라 불렀다. 백씨와 무명 라이브 가수 24명의 모임 '엔젤싱어즈'가 마련한 이날 공연은 3시간 만에 백씨의 인기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공연은 백씨가 북한의 포격 도발로 상처받은 연평도민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련한 자선 공연이었다. 불우이웃을 위한 백씨와 가수 후배들의 공연은 올해로 3년째지만 이렇게 큰 규모는 처음이다. 1만원짜리 공연티켓 300장이 모두 팔렸다. 공연 수익금 240여만원 중 일부는 구리시청이 소개한 소년·소년 가장과 독거노인 등을 위해 쓰고, 나머지는 모두 옹진군청을 통해 연평도 주민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백씨는 "음악생활 23년째인데 이번 공연이 가장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연평도 주민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백씨는 1990년 '난 바람 넌 눈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1992년 경기도 일산에 330㎡가 넘는 큰 라이브 카페를 열었고, '잘나가는' 가수 사장님이 됐다. 하지만 1998년 화재로 카페가 전소(全燒)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불이 나기 1주일 전 만기가 찾아온 화재보험을 재가입하는 것을 깜빡해 보험금을 한 푼도 못 받았다. 원래 살던 전셋집을 나와 오피스텔을 전전하며 월세 생활을 했다.

그는 "무일푼이 돼 전기료도 못 낼 정도로 궁핍하게 살았다"고 했다. 백씨가 전 재산을 날리고 좌절하던 그해 어느 날 강원도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자선공연 의뢰가 왔다. "나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와야겠다고 생각해 강원도로 향했지요." 공연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장애인 시설 관계자가 "여기까지 오셨는데 기름값이라도…"라며 백씨에게 10만원이 든 흰 봉투를 내밀었다. 백씨는 "아니, 전 그저 힘내시라고 왔을 뿐인데요"라며 돌려줬다. 이 시설은 1년 뒤 백씨를 다시 초청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은 수화로 백씨의 인기곡 '난 바람 넌 눈물'을 불러줬다. 백씨는 "그때 처음으로 펑펑 울었어요. 그리고 다시 일어서겠다고 결심했지요"라고 말했다.

백씨는 전국의 라이브 카페를 돌아다니며 기타 하나 들고 가수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2002년에는 자신의 히트곡을 중심으로 한 리메이크 앨범을 냈다. 백씨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강원도 자선공연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줬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의 마음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 잘 알지요. 그리고 마음은 따뜻하게 나눠본 사람이 더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연평도 주민분들 용기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