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고교선택제, 전세시장 바꿨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사는 하성우(가명·48)씨는 일원동이나 수서동 쪽으로 전셋집을 옮기려고 몇 달째 고심 중이다. 딸(15)을 개포동 인근 유명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이곳에 살았지만,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개포동 인근 지역에만 살아도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학군을 따라 이사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매년 겨울 방학철마다 되풀이됐던 현상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면서 학군 수요에 따른 '전세 지도'가 달라졌다. 그동안 개포동·반포동·목동 등 선호 학군이 있는 지역에 수요가 몰렸지만 최근에는 주변 지역까지 인기를 끌며 전세금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우수학군 인접 지역, 전세금 덩달아 올라

실제로 겨울방학 이사철이 시작된 지난달 동작구 사당동, 노원구 상계동, 양천구 신정동 등 인기 학군의 '주변 지역' 전세금이 일제히 올랐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반포나 방배동에 있는 학교와 인접한 동작구 사당동 전세금은 10월보다 0.46% 올랐다. 양천구 목동 옆에 있는 신정동은 0.5%, 개포동과 대치동 근처의 일원동은 1.9% 올랐다.

작년과 비교해도 올해 상승률이 두드러진다. 강남학군을 노릴 수 있는 사당동이나 성동구 응봉동의 전세금은 지난해 11월엔 변동이 없었지만 고교선택제가 시행된 올해 11월은 일제히 올랐다. 상계동 전세금은 지난해 11월엔 0.07% 내렸지만 올해는 0.28% 올랐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11월은 방학 직전이라 학군 수요가 전세금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사당동의 우리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반포에 있는 인기 고등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사당동 등 동작구로 오는 수요가 꾸준하다"고 말했다. 사당동이나 흑석동에 아파트를 분양하는 건설사들은 "이곳에 살면 고교선택제 시행으로 강남 8학군에 배정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고교선택제 1·3단계를 노린다

도봉구 방학동에 사는 이재구(가명·52)씨 부부는 아들 진학을 위해 성동구 옥수동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이씨는 "소위 '강남 8학군'에 보내주고 싶지만 강남 한복판으로 이사하기에는 부담돼 조금 더 싸면서도 강남 학군에 갈 수 있는 옥수동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시행된 고교선택제에 따라 고등학교 배정은 총 3단계를 거친다. 1단계에서는 지역에 상관없이 2곳을 골라 지원해 추첨받는다(학교 정원의 20%). 2단계는 예전처럼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2곳을 골라 배정받는다(40%). 3단계에서는 거주지 학군과 '인접 학군'에서 교통 편의 등을 고려해 배정된다(40%).

고교선택제 시행 전에는 대부분 거주하는 동(洞)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이제 인접한 구(區)나 가까운 동에 살아도 인기 학교에 갈 확률이 높아졌다. 산술적으로는 60%(1단계 20%+3단계 40%)의 문호가 열린 셈이다.

가령 고교선택제 3단계에서 강남 학군은 성동·강동·동작 등과 '통합학군'으로 묶인다. 따라서 동작구 사당동이나 흑석동에 살아도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학교에 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경기도는 고교선택제에 따른 전세시장 영향이 거의 없다. 경기도는 수원·성남·안양·부천·고양시 등 5개 지역이 선택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방식이 서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성남과 고양의 경우 1단계(정원의 50%)는 시 전체를 대상으로, 2단계는 학군 단위로 학교를 배정한다. 예를 들어 인기가 높은 일산 백석고에 가려면 고양시에만 살아도 1단계에서 지망해서 추첨받을 수 있어 굳이 인기 학교 인근으로 이사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