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땅에서 지은 罪, 음악하며 뉘우쳐"

불 꺼진 무대 위로 파란색 죄수복 바지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8명의 재소자가 긴장한 얼굴로 나타났다. 파키스탄 출신 아산(가명·32)씨 등 코러스를 맡은 팀원들이 "우우우…"하고 선창하자, 베이스 담당이 "둠바둠바둠바…"하며 박자를 맞췄다. 중국·베트남·태국·파키스탄 등 국적이 제각각인 재소자들 입에서 나온 아카펠라 화음이 어우러졌다. 걸그룹 미쓰 에이(miss A)의 인기곡 '배드 걸 굿 걸(Bad Girl Good Girl)'에 이어 아리랑을 율동과 섞어 선보이자, 강당에 모인 다른 수감자들이 박수치며 환호했다.

지난달 29일 낮 외국인 전용교도소인 천안교도소 강당에선 특별한 '옥중(獄中) 공연'이 열렸다. 지난 4월 개소한 이곳의 외국인 재소자들 가운데 30여명이 이날 4개월가량 익힌 아카펠라·합창·악기 공연을 선보였다. 천안교도소에는 26개 국적에 총 520여명의 외국인 재소자가 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재소자들은 지난 7월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법무부가 손을 잡고 시작한 교정시설 대상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카펠라 팀원인 아산씨는 작년 8월 경기도 화성에서 필리핀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버스에서 내린 여성을 따라가 길을 묻는 척하면서 승용차로 납치한 뒤 외딴 곳의 컨테이너로 데려가 저지른 범죄였다. 2004년 한국에 와 배관공으로 일하던 그는 "순간적인 욕정을 참지 못해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2015년 8월까지 천안교도소에서 지내야 하는 그에게 '음악'은 뉘우침을 불러 일으키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촉매제가 됐다. "아카펠라가 뭔지도 몰랐어요. 노래를 배우는 것도 처음이에요.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깨닫게 됐어요."

중국인 장무겸(가명·23)씨는 악기를 연주하는 앙상블 팀으로 무대에 올랐다. 2007년 6월 위조 여권으로 입국해 경북 안동의 한 대학에 다니던 장씨는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돈을 벌다가 붙잡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장씨는 "관악기인 오카리나도 있고, 작은 기타 모양인 우클렐레도 있고…. 한 명이 7~8가지 악기를 배우고 있다"며 "누군가로부터 박수받는 일을 해본 지 너무 오래돼 어색하고 얼떨떨하다"고 했다.

천안교도소 김평근 사회복귀과장은 "이번에 공연한 사람들은 이발이나 원예, 배관기술 등을 배우고 종이봉투 접기 같은 작업을 매일 하면서도 따로 1주일에 2번씩 4시간 연습하고 있다"며 "음악을 배우는 이 사람들이 다른 재소자들보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고 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대영 원장은 "외국인 재소자들이 새롭게 출발하는 데 이번 문화예술 교육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