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펜끝에 전국 女心이 설렌다

"제 콤플렉스는 아직 상업적 작가라는 사실입니다."
까다로운 재벌과 씩씩한 스턴트 우먼의 티격태격 사랑을 담은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성공은 예견된 것이었다. 국내 방송가에서 로맨틱 코미디 최고 흥행사로 꼽히는 김은숙 작가<사진>의 손끝에서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연인', '온에어'를 히트시킨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과거를 적절하게 배반하며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초반부터 시청률은 25% 안팎을 기록 중. 그러나 뜻밖에도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깊었다. 작업 도중 연결된 전화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캐릭터와 상황, 대사는 분명히 있지만 삶과 사람, 희망이 제 드라마에 숨 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좀 더 내공이 쌓이면 인생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TV 드라마는 워낙 상업적 장르 아닌가? 그렇게 자책할 필요가 있나?

"그렇긴 하다. 시청자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확인되니까 더욱 그렇다. 그래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쓰는 내가 언젠가 '좋은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한다. 결국 시청률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날을 위해 지금 대중적 드라마를 많이 써 입지를 탄탄히 하고 싶은 것이다."

―'시크릿 가든'의 남녀 주인공 김주원(현빈)과 길라임(하지원)의 영혼이 바뀌는 설정을 놓고 일부 시청자들이 반발했다. 그런 파격이 로맨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작가로서 부담은 없었나?

"사실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 판타지 설정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청자 반응 때문에 당초 기획을 바꿀 생각은 없다. 8부에서 다시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건 원래 대본에 따른 것이다. 후반부에서 두 사람의 영혼은 다시 한번 바뀐다."

―최근작 두 편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 '온에어'는 연예계의 명암을 그렸고 '시티홀'은 절묘한 정치 풍자극이었다. 장르 실험을 계속할 생각은 없었나?

"'시티홀'은 내가 쓴 드라마 중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청률이 15% 안팎에 그쳐 아쉬웠다. 드라마 작가의 성적표는 결국 시청률 아닌가? 위기의식이 엄습했다. 새 드라마는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어야 했고 그 결과가 '시크릿 가든'이었다."

―당신의 남자친구가 김주원 같은 이기적 재벌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인간을 개조했을 것이다. 열심히 잔소리를 해서. 그리고 가진 돈을 소외된 이웃에게 쓸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다."

―숱한 명대사를 쏟아내는 비결이 궁금하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신 뒤, 식당 일하시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현실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게 대부분이니까 늘 공상 속에서 욕구를 해결했고 그게 작가적 상상력으로 이어진 것 같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다니면서 글로 인생을 바꿀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