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우중충·듬직하게 생기면 보기 부담되는기라" 목물도 요즘 세대에 맞게 다이어트시켜야지~

지리산의 목기를 일명 ‘운봉(雲峰) 목기’라 한다. 일제시대 산내면(山內面) 공립보통학교에 만물과(挽物科)와 칠공과(漆工科), 목공과(木工科)를 두어 목물(木物)전문기능공을 육성시킨 데서 전래된 것이다. 당시 학교 목공과에서 생산된 순실(순옻칠) 바릿대는 운봉완(雲峰?M)이라 이름을 붙여 수백 벌씩 일본으로 수출됐다. 남원의 운봉목기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살림 잘하는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본래 산내면에는 목재가 풍부하여 조선시대부터 전국의 목기가 이곳에서 생산됐고, 그중에서도 지리산에 위치한 실상사와 벽송사에서 직접 제작, 사용하고 나머지를 전국으로 판매했던 것이 이어져 오늘의 남원 하면 '목기'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943년 산내면에서 태어난 박수태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부친과 함께 목기공방을 운영하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도 부친이 설치해놓은 수동식 족닥기(발갈이, 모터 없이 두 발을 이용해 목기를 깎는 일종의 회전 틀)를 비롯, 여러 목공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취재차 찾아간 필자에게 박수태씨가 직접 보여주겠다며 공방 구석에 설치된 족닥기에 올라가 신나게 두 발을 휘저으며 노래를 불러댄다.

〈복순아 영자야 뒤 꽉꽉 밟아라/ 돌아온 장날 장에 가서/ 베르베토(벨벳) 호박단치마 사주마/ 어허야 어혀야 얼씨구 좋다/ 뒤 깍깍 밟아라!〉

"박 선생님 그게 무슨 노래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그가 자신이 앉아있는 뒤쪽을 가리키며 "저 혼자 밟기 힘이 드니 주로 뒷자리에 마누라나 여직공들을 앉혀 함께 밟는 거죠. 그래야 힘이 덜 든다 이겁니다"하고 말한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럴 거요. 먼저 도에서 문화재 지정 관계로 심사를 나온 교수들도 이것은 처음 본 모양입디다. 그들은 목기 깎는 기계, 연장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릅디다. 그래서야 무슨 실사를 다니는지 참내."

그가 아버지와 처음 목기를 만들 때는 동력 전기가 없었다. 당시 백미 10가마 값을 들여 이런 족닥기를 만들었다. 온갖 기구들은 다 만들어 썼다. 다른 이들은 물레방아를 이용하여 목기를 깎기도 했다. 나무 다루는 법 역시 다양하다. 선질과 눈질(나무를 세우거나 눕히는 것)방식, 건조방법, 켜는 법 등 모두가 경륜 있는 사람이 다뤄야 목기가 갈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목기 하면 물푸레나무라 하는데 이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물기 많은 물푸레를 금방 베어서 옻칠을 하면 어찌 되겠는가 하는 얘기였다. 그는 물푸레보다 은행나무, 오리나무를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나무는 주로 11월 이후에 베어오는 게 가장 좋다. 나무 중에선 은행나무, 괴목, 노각나무 등이 고급 축에 든다. "오리나무는 표고 100m 이상 응달진 곳에서 자생하며 물푸레나무는 보통 600m 이상의 너들겅(주로 돌이 많은 골짜기)에서 자라는데 무늬가 좋아 목물(木物)용으로 사용하는 거죠."

나무에 대해 줄줄이 외어대는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기록하기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박수태씨의 부인인 김청자씨가 점심이 준비되었다며 2층 방으로 안내했다. 김기춘 사진작가는 사진 찍기에 더 바빴다. "평생 처음 이런 밥상을 받아본다"는 얘기였다. 반찬류 모두가 지리산 자락에서 직접 심어 채취한 것들이었다. 지리산 입구 마을 초입의 박수태씨 자택, 전시장, 공방은 지리산 둘레길에 오르내리는 등산객, 관광객들의 민박집 역할도 한다.

점심을 먹은 방엔 그간의 민박객들이 남겨놓은 글을 모은 두툼한 메모 책자 두 권과 벽엔 2002년 일본에서 활동하던 칠예가 전용복이 선물한 벽화 두 점도 함께 걸려 있었다.

그가 긴 얘기를 이어갔다.

"옛날엔 말입니다. 나무 구하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영림서며 지서 모두가 우리들에겐 최고로 무서운 상대였죠. 특히 박정희 시대는 산림녹화정책 때문에 도무지 나무를 구할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몰래 깊은 산 속에 가서 나무를 베어와야 하는데 요소요소마다, 길목마다 영림서(營林署) 직원, 지서 순경들이 있는기라. 그러다 보니 항상 봉투 몇 개씩은 가지고 다녀야 하는 기라. 우리들도 꾀를 써서 밤늦게 다니는 예가 많았는데 아, 글씨 도로가 비포장 도로라 우마차 소리가 좀 요란해야지. 숨죽이고 다녀도 꼭 걸린단 말이제. 그래도 목기가 잘 팔려나가 그런대로 생활하는 덴 지장이 없었지요. 그나마도 이젠 틀린 것 같아요.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등 저렴한 식기들이 좀 많이 나와야죠.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발휘하여 전통 그릇을 사라고 할 수도 없고…. 남원시에서 추어탕식당에 옻칠 그릇을 납품하면 50%를 지원해 주는데 이게 소비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사가면 그만 인기라. 무슨 대책을 세우긴 세워야 하는데. 배우는 애들(견습생)도 없고, 나도 3남1녀지만 겨우 장남(박봉만)을 붙들고 옻칠공방을 차렸는데 목기백골만하다가 옻칠공방까지 하려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든지. 논 한 마지기 팔아 다 날려버렸지. 요즈음 재료비, 인건비, 운반비 모두 오르기만 하는데 목기는 팔리지 않고 이대로 종치는 것 아닌지 모르겠소. 목물도 분명 벤처사업화할 수 있는데. 그간 만들어놓은 재고가 많았는데 작년에 이 회장님께서 와보시고 전국에 알려주신 덕분에 어느 정도 다 팔려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신이 나서 열심히 깎고는 있지만…."

박수태씨는 2001년에 남원시로부터 명장(明匠)으로 추천받은 것을 비롯하여 전국 공예 관련 각종 공모전에 목물과 옻칠 공예품을 출품하여 많은 상을 받았다. 올해는 또 문화재청에서 지원한 로마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최된 '한국 나전(螺鈿)과 옻(漆)특별전'에 목물백골계에선 최초로 출품·전시되는 행운도 얻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염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운봉목기의 전통을 되살려 세계적 명품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는 "기존의 제기, 밥상, 차도구, 식생활용품 등에서 과감히 탈피해 선진국 국민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20~30대가 좋아할 수 있는 날씬한 목물, 즉 목기도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기라. 너무 우중충하고 듬직하게 보이면 우선 보기부터 부담이 되는기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목물을 깎는 기계의 기능도 좋아졌고 다양한 목질의 나무도 구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목기장이들에게도 쓴소리를 했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마다 ○○무형문화재 제 몇 호 ○○○선생 이름으로 '국내산 양질의 나무만을 엄선하여 장인의 혼이 깃든 수공예품 48개 1세트에 249,000원씩 판다(그것도 카드로)'며 신문광고를 해대는데 옻칠 한관에 얼마인데 그게 가능한가" 하는 얘기다. 박씨의 말에 일리가 있다.

수공예 장인들이 자기 직업에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박수태씨의 주장은 옻칠(漆) 공예의 근간인 목물 제작기술을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정부의 의식이 달라져야 하고, 좀 더 현실에 맞는 정책과 고품격의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목물 개발에 좋은 디자인 아이디어와 유통방법 등을 제시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거다.

운봉목기가 지리산 둘레길 좌우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처럼 또다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