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배달한 건 편지에 실린 마음"

휴대폰 문자메시지, 이메일, 트위터(twitter·단문 문자메시지 서비스)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변인과 소통하는 요즘 세대에게 편지 한 통은 어떤 의미일까?

12일 낮 충남 태안군 안면우체국 앞. 30년 전 손에 쥔 마지막 편지 한 통 전하고 돌아오다 순직(殉職)한 집배원 오기수(당시 48세·작은 사진)씨 3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부인 권진숙(73)씨와 3남3녀 그리고 150여명의 우정사업본부 임직원이 참석했다.

오씨는 폭설주의보가 내린 1980년 12월 12일 외진 마을 주민에게 그날 배달할 마지막 편지를 전하고 우체국으로 돌아오다가 눈길에 발을 헛디뎌 동사(凍死)했다. 이 사실은 조선일보(1980년 12월 19일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도덕 교과서에 실리는 등 큰 관심을 모았다.

"따뜻한 밥과 국을 아랫목에 묻어 두고 밤새 남편을 기다렸는데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눈이 징그럽게 많이 오던 밤이었지요."

부인 권씨는 "30년 전 그날이 마치 어제 같다"며 "남편은 편지를 받아든 이웃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말하곤 했다"며 새삼 눈시울을 붉혔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오른손 약지가 잘려나간 상이군인이던 남편은 12년 동안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단 하루도 결근한 적이 없었다.

"그날도 눈이 너무 많이 오니 나가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편지 기다리는 사람들 마음을 생각해야지'라며 나갔어요."

남편이 순직한 후 가족은 모진 시간을 겪었다. 부인 권씨는 충격으로 몸에 이상이 생겨 거동이 쉽지 않았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맏딸 오차남(당시 23세)씨의 박봉을 쪼개 일곱 식구가 생활해야 했다. 장남 오국진씨와 어린 동생들이 직접 농사도 지었다. 지금은 3남3녀가 장성해 교사와 공무원 등이 됐다.

맏딸 오씨는 "아버지는 '끝까지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라'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셨다"고 했다. "처음엔 '아버지가 왜 편지 한 통 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길을 갔을까' 원망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알 것 같아요. 편지에 담긴 누군가의 진심을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었던 거겠죠."

우리나라에 우편제도가 도입된 1884년 이후 지금까지 업무 중 사망한 집배원은 360여명으로 매년 3명꼴이다. 강에 빠뜨린 우편엽서를 건지려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경우도 있었다. 추모식에 참석한 남궁민 우정사업본부장은 "음지에서 고생하는 집배원의 정성을 결코 잊지 않겠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예방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