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착각과 硬直

〈총보〉(1~139)=139 다음 참고도 1로 끊어봐도 8까지, △ 두 점이 단수에 몰려 있어 백은 헤어날 길이 없다(5…2). 보통 이런 상황을 맞으면 뜸들이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게 마련. 그러나 이창호는 미동도 않고 판을 응시하더니 1분여 만에 납덩이처럼 무거운 손길로 돌을 쓸어담았다. 패배에 대한 자책감, 이번에도 부진에서 탈출하지 못한 낭패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날 밤 이창호는 함께 출전했던 안조영, 최철한 등과 어울려 밤늦은 시간까지 복기(復棋)를 했다. 그리곤 "두 번이나 엉터리 수를 두었으니 억울할 것도 없는 바둑"이라고 자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의 '엉터리 수'란 42와 66이었다. 42로는 43에, 66으론 67쪽에서 단수치고 씌웠어야 했다는 것. 전자는 경직(硬直), 후자는 착각이 원인이었다.

바둑은 대표적 개인 승부이면서도 국가 간 경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많은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2년 연속 중국에 넘어갔던 LG배를 되찾아와 줄 것으로 기대했고, 이세돌과 이창호를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았었다. 이세돌의 1회전 탈락에 이어 이 대회 최다 우승자 이창호마저 8강서 사라진 아쉬움을 어느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106…24, 128…125, 139수 끝 흑 불계승, 소비시간 백 3시간, 흑 3시간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