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욕망의 현장, 다시 그 저잣거리로…

소설가 박범신(64)씨가 새 장편 '비즈니스'(자음과모음)를 냈다. 중국과의 무역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대(對)중국 교역의 중심지로 떠오른 서해안의 한 신도시를 배경으로 물질적 욕망을 무한분출하는 사람들이 겪는 도덕적 타락과 극복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갈망 3부작'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던 지난 3년간의 소설 작업과 이별했다. 고독과 싸우며 히말라야의 촐라체 고봉(高峰)에 오르는 이가 등장하는 장편 '촐라체'(2008) 이후 박범신씨는 지도 제작이란 일생일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김정호의 삶을 다룬 '고산자'(2009), 어린 소녀가 발산하는 젊음의 에너지를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목말라하는 노년의 심리를 그린 '은교'(2010)를 잇달아 발표하며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열망의 다양함을 형상화했다. 작가는 내적 갈망 대신 사회적 욕망을 다룬 이번 소설이 "골방에서 뛰쳐나와 삶의 뜨거운 현장인 저잣거리로 돌아온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과도한 물욕(物慾)과 출세욕으로 인해 삶의 가치가 전도된 이들이 등장하는 이번 소설에는 1980년대에 작가가 발표했던 세태소설의 그림자가 보인다.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매춘에 나선 가정주부, 시장(市長)에 출마한 정치인을 도우며 사회적 성공을 꿈꿨지만 선거가 끝난 뒤 버림받자 고위층 집만 전문으로 터는 도둑으로 전업한 전직경찰, 신도시 개발 열풍에 자의 반 타의 반 뛰어든 사람들이 토해내는 욕망의 한숨과 그로 인한 파열음이 이어진다.

개인적 삶의 좌표를 찾는 '갈망 3부작'의 테마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해 세태소설과 맞물린 점도 특징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큰 집, 보다 빠른 자동차, 보다 큰 텔레비전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다"고 진단하는 작가는 "물질적 욕구를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을 위해 살면 오히려 더 큰 갈증을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소설의 배경인 'ㅁ'시 시장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자신의 횟집 앞을 지나는 해안도로와 그 옆에 세워진 쓰레기소각장 때문에 손님이 끊기자 도둑질에 나선 남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장을 납치한다. "미안하다"는 말만 해도 풀어줄 생각이었지만 시장은 "시(市)의 발전을 위한 당위적 정책이었다"고 항변한다. 한편 몸을 팔던 '나'는 손님으로 만난 도둑에게 자폐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연민을 느낀다. 남의 처지를 상상하는 경험이 두 사람에게 범죄와 비즈니스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열어준다.

이번 소설은 작가에게 독자의 경계를 한반도 밖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도전의 의미도 지닌다. 한국 문예 계간지 '자음과모음' 2010년 가을호·겨울호와 중국 상하이문예출판사에서 펴내는 격월간 문예지 '소설계'에 이 작품을 동시 연재한 데 이어 단행본으로도 양국에서 동시 출간했기 때문이다. 한·중 양국 독자들이 함께 관심을 가질 사회성 짙은 주제를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박범신씨는 "정치와 달리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길에 들어선 이후 중국 독자들도 우리처럼 물질적 욕망과 대면하기 시작했다"며 "중국인들이 내 소설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읽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