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2010 그사건 그사람 그후] [2] 인천대교 버스 추락 참사

지난 11일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위덕대학교에서 만난 고길환(47) 교수는 "제 삶은 죽어 있습니다"고 되뇌었다. 빨개진 눈가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책상 서랍 안엔 활짝 웃는 그의 딸 고(故) 은수(17)양 사진이 수백 장 들어 있었다. 은수양은 지난 7월 3일 포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탔다가 승용차와 추돌한 버스가 10m 아래 공사현장에 떨어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은수양은 한국에 들렀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씩씩하고 명랑했던 은수양은 건축가를 꿈꿨다. 사고 하루 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은수양은 포항 친구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버스에 타고선 줄곧 잤다. 고 교수는 "딸이 고단하게 자는 것 같아 '잘 가라'는 전화도 안 했다"며 "TV로 속보가 나온 뒤에야 거듭 전화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고 교수는 지난해부터 '기러기 아빠'로 지냈다. 부인 이화숙(48)씨는 딸을 뒷바라지하러 같이 출국길에 올랐다가 사고를 당했다. 척추가 부러져 못과 철심을 박았고 폐출혈이 심해 몸에서 4000㏄나 되는 피를 뽑아냈다.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지만 상처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고 교수는 울부짖었다. "다행히 아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요. 우리 아이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줬는데….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인천대교 버스 추락 참사는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진행형이다. 지난 8월 전국 버스공제회와 협의했지만 사망자 14명 중 7명의 가족만 보상금에 합의했다. 부상자 10명의 보상은 한 명도 해결되지 않았다. 사고 수사도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안전 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버스 기사 정모(53)씨가 부상에서 회복하는 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유족과 부상자는 대부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거나 수면제에 의지해 잠을 청하고 있다. 경주 안강읍에 사는 설해용(69)씨는 막내아들의 아들 돌잔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딸 여진(39)씨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인천공항 부근에 사는 설씨 막내아들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 때문에 인천 쪽으로 이사했다"며 "때로 '나도 부모님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싱가포르 여행길에 올랐던 경주대 임찬호(43) 교수는 부인·큰아들·막내딸과 참사를 당했다. 둘째아들(7)만 살아남았다. 임군은 사고 직후 임 교수 동생 집에 머물면서 서울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사고 후 병상에 누워 "엄마 아빠는 괜찮아요?"라고 묻던 임군은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엄마 아빠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한동대에서 강의하기 위해 미국에서 방한했던 목사 예규범(42)씨도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목숨을 잃었다.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어머니 김동숙(68)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37년 전 미국에서 과일 청과상을 하며 키우고 대학 때도 등록금을 받았던 효자"라며 "요즘도 하늘을 보고 두리번거리면서 '아들이 저 세상 어딘가 있겠지'라고 혼잣말을 한다"고 했다.

호주 출장을 가던 포스코기술연구원 서인국(53)씨는 뇌진탕에 갈비뼈 5개가 부러졌지만 빨리 회복해 2주 만에 직장에 복귀했다. "잠을 자다가 사고가 난 지 40분 뒤인 1시 50분쯤 깼는데, 안전벨트에 의지한 내 몸이 차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피에 흥건히 젖은 시신 몇구가 눈에 들어왔지요." 그의 옆에서 같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던 동료 이시형(45)씨는 결국 숨졌다. 서씨는 "10년 넘게 함께 일한 동료를 눈앞에서 잃었다"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사고를 낸 운전기사 정씨는 머리 수술과 다리 수술을 네 번 했고 지금은 경북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기자와 만난 정씨는 "나도 가족이 있는 사람인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사고 현장은 눈을 감고도 매일 지나가던 곳"이라며 "속죄하는 마음뿐"이라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요. 유족들에게 사과할 경황이 없었습니다. 몸만 다 나으면 법의 심판을 모두 다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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