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아시안게임 종목서 바둑 탈락'

'바둑'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9일 발표한 2014년 대회 36개 경기종목 명단에서 빠진 것이다. 지난 5월 조직위의 1차 발표 때 후보 명단에도 들지 못해 웬만큼 예견됐던 일이긴 하지만, 광저우(廣州) 대회 석권으로 한창 설레던 바둑계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광저우에선 열렸는데 왜 한국서 치르는 대회엔 못 넣었을까. 프로 중심으로 움직이고 지역적으로도 동북아에 편중된 바둑은 제대로 된 국제기구도, 국제스포츠 무대에서의 발언권도 거의 없다. 광저우 대회 때는 주최국 중국이 바둑을 체스의 세부종목으로 집어넣는 등 치밀한 전략과 노력으로 뜻을 이뤘었다.

국내 바둑계의 안일함과 불협화음도 한 가지 이유로 꼽힌다.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인 대한바둑협회(대바협)는 2006년 아시아바둑연맹(AGF)을 결성, 의장까지 맡았으나 이렇다 할 역할을 못했다. 충분한 정지작업 없이 출발해 프로중심의 기존 한·중·일 조직과 융화를 이뤄내지 못한 것. 특히 한국기원과 서로 유기적 협조가 미흡했던 부분은 큰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대바협측은 "실낱같은 가능성이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심우상 사무국장)고 말하고 있다. OCA 헌장 69조 3항이 그 근거. "OCA는 경기종목을 삭제 또는 추가할 수 있으며, 그 경우 대회 개최 2년 전까지 제출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앞으로도 2년간 노력 여하에 따라선 '부활'이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조직위측은 "종목을 최대한 축소하는 방침인 만큼 사실상 최종안이 나온 셈"(경기부 김기동씨)이란 입장이다.

'인천 상륙작전'의 실패로 바둑계는 몇 가지 후유증을 피할 수 없을 전망. 무엇보다 정체성(正體性)의 혼란이 크다. 도(道), 예술, 학문, 게임 등 다양하게 취급돼 오던 바둑은 2001년 한화갑 당시 한국기원 총재 취임 후 '스포츠'의 길을 택했다. 바둑 지망생들의 진학, 병역 등과 관련해 훨씬 더 유리하다는 논리였다. 2009년엔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까지 '격상'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스포츠로서의 바둑'은 치명타를 맞으며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게 됐다. 운동선수가 병역특례 대상이 되려면 올림픽 금·은·동,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따야 한다. 바둑의 올림픽 동참이 꿈같은 상황에서 4년 뒤 아시안게임에도 빠져 '바둑 보국(報國)'을 통한 병역특례의 길이 사실상 봉쇄돼 버린 것. 스포츠가 되기 전 바둑의 특례 대상은 '3대 국제대회 준우승 이상'이었고 이창호 등 5명이 적용을 받았다.

프로기사 지망 중학생을 아들로 둔 학부형 P씨(44)는 "학업과 바둑을 놓고 고민하다 4년 전부터 바둑에 올인해 왔는데 후회스럽다. 이제 다시 공부로 돌아가기도 힘든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모 프로기사(23)도 "목표 하나가 사라졌다"면서 자신감 저하를 걱정했다.

바둑계는 한국기원과 대바협의 통합이 당장 어렵다면 좀 더 거시적 안목에서 서로 협조할 것, 바둑 정체성 확립을 위한 방안을 찾을 것, 상무(국군체육부대) 또는 일선부대의 바둑 특기생 제도 도입을 위해 본격 나설 것 등을 주문하고 있다. 광저우 대회서 감독을 맡았던 양재호 九단은 "바둑계 구성원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