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는 시계 장면 수없이 놓친 순간, 순간…

미국 출신인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는 1970년대부터 소리를 미술의 영역에서 다뤄온 사운드 아티스트다.

마클레이는 중고 음악가게에서 산 낡은 레코드판을 틀어 표면에 난 흠집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들려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는 또 디스크자키처럼 여러 개의 레코드판을 손으로 조작하면서 레코드판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음악과 소음을 함께 들려주는 '사운드 콜라주'를 시도했다. 캔버스나 종이에 잡지 기사나 노끈 등을 붙여서 만드는 평면 콜라주 대신 이질적인 노래와 소리를 이어붙여 소리의 콜라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사운드 콜라주를 듣는 청중은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기억이 교차하면서 결국 마클레이가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 전(展) 〈크리스찬 마클레이: 소리를 보는 경험〉에서 작가는 소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상을 아우르고 있다. 소리뿐 아니라 여러 영화의 장면을 모아 붙인 작품을 보여주는데, 〈전화〉〈비디오 사중주〉〈시계〉로 구성된 영상 3부작이다. 작품 〈전화〉는 영화에서 전화를 걸거나 받는 장면을 모아 이어붙였다. 〈비디오 사중주〉는 다양한 영화 속 장면 중 음악을 연주하거나 탭댄스처럼 소리를 내는 장면을 이어붙여 하나의 곡을 연출해내고 있다. '문 리버'를 부르는 오드리 헵번의 영화 장면을 보면서 과거 시간이 되살아나다가 곧바로 이어지는 다른 장면에서 몰입을 방해받는다. 과거와 현재, 화음과 소음이 혼재하면서 관람객은 혼돈과 감미로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경험한다.

마클레이의 최근작 〈시계〉는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영화 장면 속에서 시계와 시간에 대한 장면을 골라내 콜라주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계 또는 시간에 대한 장면을 보면서 영화 속에서 수없이 놓쳤던 시계 장면들에 놀라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계 장면은 강박적으로 다가오고, 특히 24시간을 흐르는 영상 속 시각이 관람자가 경험하는 시각과 일치한다는 점을 알면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마클레이는 "독창적인 내 작품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렘 콜하스가 디자인한 리움의 블랙박스에서 내년 2월 13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2000~3000원. (02)2014-6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