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순 없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화영의 개인전 〈쿠바(C.U.B.A)〉는 쿠바에서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고리처럼 엮여 있다. 체 게바라를 떠올리게 하는 쿠바 혁명에서부터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시대, 바다, 사탕수수의 달콤함 등 다양하다. 우선 전시장을 들어서서 만나는 푸른색 벽과 원피스가 쿠바가 위치한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이미지와 의미가 단순하게 쿠바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 나무인형인 마트료시카에서 쿠바 혁명이 러시아 혁명과 연결돼 있음을 캐낼 수 있다. 이렇듯 전시는 쿠바 자체를 풀어내는 전시라기보다 '쿠바'를 차용하면서 개인의 문제를 파고든다.

작가는 버려진 접시와 찻잔을 모아서 물을 담은 뒤 바다라고 이야기한다. 하나하나의 용기에 담긴 물은 소외된 개체를 의미한다. 이렇듯 작가는 개인의 소외라는 문제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첨단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 점점 매몰돼 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주목하고 있다. 돌고래가 보내는 신호음을 듣겠다며 자가발전 라디오를 작동하는 작가의 영상 이미지는 스스로 "충전할 때"라고 외치는 작가의 함성이기도 하다.

작가는 휴대폰과 인터넷의 확장으로 점차 밀려나는 우체통에 주목한다. 그는 "어느 날 편지를 부치기 위해 늘 이용하던 우체통을 찾았는데 하루아침에 없어졌다"면서 "사라지는 우체통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존재가 없어지는 것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존재감을 잃어가는 우체통을 통해 개개인의 존재는 얼마나 존재감을 갖고 있는지 묻고 있다.

전시를 돌아보면서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비선형적 실마리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작가의 맥락을 발견하는 순간 소외되고 있는 개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한 사람의 작은 의지나 깨어 있음이 곧 혁명이고, 이는 큰 파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전시와 별도로 스스로 제작한 시집 '쿠바'와 화집을 동시에 출간해 전시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메시지를 담았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열린다. (02)737-7650